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일 수 있는가

김상길 논설위원
김상길 논설위원

최근 건축계는 ‘건축사 의무가입’이 뜨거운 화두이다. 이미 과거에 수십 년간 시행했었고, 이를 국민의 편의와 규제철폐의 필요에 의해서 1999년에 폐지한 바 있는 의무가입제도가 왜 다시 떠오르는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건축사의 위상과 역할에 한계를 절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축계가 한 목소리로 대응하여야 하는데, 문제는 갈갈이 찢겨있는 건축동네의 현재의 상태로는 제대로 된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건축계 전체를 한 체계 안에 모으고 체계적으로 사회에 대응을 하기 위해서 바로 의무가입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똑같은 이유로 2008년에도 건축계의 통합논의가 있었다. 당시에는 통합을 위해서 3단체가 치열하게 노력하였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통합위원회와 회장단이 의결한 통합 안을 각 협회 별로 추인을 받는 과정에서 한국건축가협회와 새건축사협의회는 찬성하였지만 대한건축사협회는 투표에서 부결시킴으로써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투표로 통합을 찬성했던 한국건축가협회와 새건축사협의회는 이제는 의무가입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지금은 무슨 문제가 있는가?

서로 경험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일 수 있는가. 이때 필요한 것이 정치적 ‘사이 공간’이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이러한 사이 공간이 보장되는 장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말’은 사실상 힘을 잃게 된다. 과거 건축계의 날선 부딪침과 부정은 바로 정치적 사이 공간이 결핍된 사회임을 드러낸 것이다. 통합 추진 집단과 그토록 통합을 반대했던 집단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채 단절하며 살아온 것이다. 건축사들이 꿈꾸는 세계를 서로 공유하지도 않았고, 서로의 말도 통하지 않았던 사회가 바로 건축동네인 것이다. 이제 건축사 의무가입을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 2008년도에는 불가능했던 건축계의 통합을 다시 이루자고 하는 제안이다. 과연 이 제안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를 위해 건축계의 여러 단체들(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새건축사협의회,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사)서울건축포럼)이 최근 두 번의 사전 모임을 가졌다. 민감하고 어려운 소통과 타협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일 것으로 생각되며 그러함에도 같이 모여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나가는 이유는 건축계의 분열의 골을 메우자는 소통에의 희망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하자는 것에 각 단체가 동의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노력조차 무산된다면 건축계의 분열은 더욱 고착화될 것이며, 이는 곧 건축계에서 ‘말’이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사 의무가입’은 모든 건축사가 건축사협회로 모이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속해 있는 모든 단체들도 빅 텐트 안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다. 서로 경험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른 사람을 식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양보하고 인정해야 하는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건축사협회는 호스트로서 사려 깊은 환영으로 각 단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물론 빅텐트 안으로 들어가는 단체들에게도 게스트로서 세밀한 준비와 통 큰 합의를 요구한다. 서로 단절되고 갈등의 관계였던 건축계의 단체들이 소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감각은 다른 입장을 내 것처럼 이해할 수 있는 타자 지향적인 ‘상상력’과 타인을 위해 자신의 주관적 조건을 접을 수 있는 ‘공통감각’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소통의 노력이 지금 건축계에 요구되고 있다.

우선 각각의 단체를 그대로 인정하여야 한다.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국건축가협회로부터 의무가입에 대한 찬성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의 역사와 활동에 대해서 인정하고 더 견고하게 활동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규모도 훨씬 적고 역사도 짧은 한국여성건축가협회와 새건축사협의회, 서울건축포럼에게도 그들의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더 많은 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건축계에 풍성한 ‘말’이 도입되는 것을 담보하는 노력이다.

이와 더불어 사전모임에서 각 단체가 요구한 것은 대한건축사협회가 얼마나 정의롭고 단호하게 모든 일탈과 범법을 제어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이미 건축계 내에는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소수에 대한 권리의 침해, 다수의 이익을 위한 무언의 일탈이 수 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대한건축사협회에서는 이제부터는 얼마나 단호하게 관리하는지를 보여주고, 또한 나중에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그 기조가 전혀 흔들리지 않을 틀을 만들 것을 요구한 것이다.

두 번에 걸친 논의 중에 이미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이러한 모든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모든 협회의 회원 개개인의 동의와 공감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노력은 또 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각 단체에서 이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도 그 어느 노력만큼이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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