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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기억이 살아있는 아차산성

기사승인 2020.02.03  13: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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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최 동쪽에 위치한 아차산성

▲ 아차산성 4보루

서울의 내사산과 외사산을 돌다보면 서울 동쪽 끝 외사산에 아차산이 자리하고 있다.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등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이곳은 새해 해맞이 때가 되면 서울 동쪽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장소다. 새벽에 피난길 가듯 아차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허연 불빛 같은 것이 장관이다. 낮과 밤에도 경치가 좋고 야경 또한 환상적이다. 광진구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서도 가벼운 산행과 산책을 즐기려고 많은 사람들이 휴일이면 이곳을 찾는다.

아차산은 아차산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백제에서 보루로 활용됐던 기록을 보면, 산행을 위한 공간이기 이전에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라 할 수 있다. 가벼운 산행을 하면서 백제의 기억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창녕 화왕산성과 같은 산성 형식은 테뫼식이다. 테뫼식 산성이란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을 의미한다. 아차산성을 오르는 길은 지역마다 다양하다. 가장 길게 산행한다 해도 3시간 정도면 아차산과 용마산을 돌아 아차산 둘레길을 지나오기에 충분하다.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에서 출발해 아차산 생태공원을 거쳐 팔각정을 지나 대성암을 지나면 아차산성 보루가 나타난다. 보루의 흔적이 기록된 글을 보면서 다닐 수 있어 좋다.

○ 아차산성
아단성(阿旦城), 장한성(長漢城), 광장성(廣壯城) 등으로 불리는 아차산성(阿嵯山城)은 경사진 산허리 윗부분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사적 제234호로 지정된 유적이다. 광진구와 구리시, 중랑구 등과 연계된 약 1만 3375m² 규모를 자랑한다. 아차산성은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을 대비하기 위해 광주에 도읍을 두고 있을 때 쌓았다고 한다. 현재 동쪽, 서쪽, 남쪽에 문터와 수구(水口)터만 있을 뿐 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 안 작은 계곡을 아우르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성벽은 약 1㎞ 정도인데, 해발 200m 산꼭대기에서 시작해 동남쪽 한강변의 경사진 산허리 윗부분에 둘러쌓았다.

기본적으로 경사진 땅을 깎는 삭토법(削土法)을 이용해 대강 형태를 잡은 뒤 윗부분에 낮은 석루를 둘러서 쌓았던 것 같다. 현재 석루 부분은 무너지고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모습만 확인된다. 높이는 성벽 밖에서 보면 평균 10m 정도지만 그보다 더 높은 곳도 있다. 성벽 안쪽은 1∼2m 내외인데, 수구 주변은 평탄해져서 안쪽 벽이 남아 있지는 않다. 성 밖에서 강변나루터에 이르는 구간은 좌우 지형을 이용해 흙을 깎아 놓았다. 성벽을 대신했던 흔적은 엿볼 수 있지만 현재는 주택이 생기면서 원래의 모습을 잃은 상태다. 아차산성은 백제 도성의 운명을 좌우하는 도하처를 수비하기 위해 쌓은 산성으로,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 맞은편에 있는 서울풍납동토성과 함께 가장 중시된 성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시대의 아단성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한편 475년 백제 수도가 고구려에 함락되었을 때 아차산성 아래에서 백제 개로왕이 죽임을 당했고,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이 죽령 이북의 실지 회복을 위해 신라군과 싸우다가 역시 이 성 아래에서 전사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아차산 일대 보루군
아차산에는 능선을 따라 작은 봉우리마다 ‘보루’라고 하는 군사 유적이 있다. 보루란 적을 막거나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산꼭대기에 만들어진 요새를 뜻한다. 일반인이 거주했던 산성과 달리 이곳 보루는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전망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아차산 보루들은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만들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 63년에 한강 유역에 진출한 이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물러날 때까지 사용됐다.

삼국시대에 한강 유역은 백제와 신라에서 중국과 교류할 수 있는 교통로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4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남진 정책을 펼치던 고구려에게도 한강 남쪽 공략을 위해서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아차산 보루군은 백제 한성기의 도성인 풍납토성과 한강 건너 남쪽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한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관계에 있었던 당시의 고구려와 백제의 긴장된 관계를 보여준다. 아차산에 산재한 약

20여개의 보루들은 각각의 위치마다 저마다의 능이 있다. 가장 북쪽에 있는 수락산 보루에서는 아차산 남쪽 일대가 잘 보이며, 임진강 유역에서 양주분지, 중랑천, 한강유역에 이르는 고대 교통로를 보기에 적당하다. 망우산 보루에서는 북쪽 의정부에 이르는 길목까지 볼 수 있고, 용마산 보루들은 중랑천 일대를 방어하기에 적당하다. 아차산 줄기에 있는 보루들은 왕숙천변을 방어하기에 유리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강변 낮은 구릉에 있던 구의동보루와 자양동 보루에서는 아차산 일대와 한강변 평지를 조망할 수 있었다.

○ 아차산 3보루
아차산 3보루는 아차산 줄기의 6개 보루 중 가장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296미터에 있어 동남쪽에 있는 아차산 2보루와 한강 이남, 서쪽 용마산 보루들을 바라볼 수 있는 요충지다. 성벽 둘레는 약 450m이고 내부면적은 약 6,500m²로 추정되며, 아차산 일대 보루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에 이뤄진 발굴조사에서는 배수로와 여러 건물기단, 성벽 등이 드러났다. 이때 다른 보루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더덜방아의 불씨로 추정되는 물질이 발견돼, 아차산 3보루가 아차산 일원 병사들의 식량을 지원했으리라 추측되고 있다. 나머지 구역도 조사되면 아차산의 다른 보두들과 관련해서 이곳이 어떤 기능을 했었는지 좀 더 분명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 아차산 4보루
아차산 4보루는 크게 성벽과 건물터로 구성되어 있다. 둘레 249m의 성벽은 바깥 면에 돌을 쌓고 안쪽 경사면은 뒷채움돌과 흙으로 자져 메우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외부를 감시하고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유리한 곳에 치를 설치했다. 독특한 구조로 된 남쪽 이중치는 출입구로 추정되는데, 고구려 성 쌓기의 전형적인 되돌림 들어쌓기 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성벽 안쪽 건물터는 병사들의 생활에 필요한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항아리, 명문접시, 시루 등의 그릇과 투구, 칠갑, 창, 도끼, 화살촉 등의 무기, 낫, 쇠스랑 등의 농기구, 재갈, 등자와 같은 말갖춤이 발견됐다. 이 보루는 외벽 등 보강 공사를 해 시민들에게 개방한 전망대다. 이곳에 오면 문화재 복원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 대성암과 쌀바위
아차산 팔각정을 지나면 해맞이 공원에 도착하기 전에 갈림길이 나온다. 대성암으로 갈라지는 우측등산로와 정상으로 가는 직진코스다. 구리시를 바라보는 조망을 보려면 대성암으로 발길을 돌려도 좋다. 대성암에는 작은 암자와 산신각, 대웅전, 종루가 있다. 이곳 대웅전 뒤에는 특이한 바위가 있다. 바로 쌀바위다. 이 대성암은 삼국시대 신라의 유명한 승려인 의상대가사 도를 닦던 곳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사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이곳에 찾아 왔는데 수도 자리 뒤에 난 바위구멍에서 쌀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양을 대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밥을 짓는 사람이 이 천공미를 좀 더 많이 얻고자 욕심을 내서 바위구명을 더 넓히려고 하니 쌀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쌀뜨물과 타버린 쌀만 수삼일 동안 나오다가 멎었다 한다. 그 후로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유리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조치돼 있다.

역사는 삶 속에 있다. 생활의 움직임 속으로 들어오는 역사는 장소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 장소가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지식이 가득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아차산. 잠시 시간을 내면 올 수 있다니. 오늘도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느끼고 왔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아차산 안내판

김영훈 건축사 (주)어반플레이스 종합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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