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전진삼의 와이드 스마일

▲ 전진삼 논설위원(격월간 《와이드AR》 발행인 겸 간향클럽,미디어랩&커뮤니티 대표)

건축계에는 잘 지은 건축물에 수여하는 여러 종의 ‘건축상’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건축의 인문적 배경의 연구물에 가치를 부여하여 시상하는 제도는 여전히 낯설고 관심 또한 미약하다. 건축설계를 주업으로 하는 건축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건축역사이론가들의 수적 열세는 이 분야의 전망을 흐리게 하는 요인이 될뿐더러 건축지식 생산 시스템의 결함을 방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저들을 향한 지원 사업이 현행 과학재단과 학술재단 및 건축학회 등에서 이루어지는 것 외에 민간차원에서는 전무하며 그나마 신진 연구자들을 위한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다. 건축이론과 역사, 미학과 비평분야의 신진 학자와 연구자들 및 예비 저자들을 대상으로 우수한 연구물을 발굴하여 출판 지원을 하자는 발의로 출발한 심원건축학술상은 매년 응모작 가운데 1편의 연구물을 선정하여 1천만 원의 상금(고료) 및 출판을 지원해오고 있다.

심원건축학술상의 태동

2008년 5월 심원건축학술상의 제정 의지에 뜻을 같이 한 당시 40대 후반의 중견 건축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1기 위원회(운영위원 배형민, 안창모, 전봉희, 전진삼)는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 이하 사업회)의 설립 취지를 함께 궁구하며 이를 충분히 반영한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의 공모요강을 발표하게 된다.

사업원년 첫 번째 당선작의 영예는 상고시대 이후 근세조선의 시기에 이르는 우리나라 벽돌건축의 조영원리를 다룬 박성형(당시 (주)정림건축 기획실장, 현 (주)정림건축 소장)의 “벽전(甓甎)”이 차지했다. 석사학위 논문으로 학위 취득 후, 10년간 응모자의 책장에 꽂혀있던 논문이 세상에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2회 당선작은 루이스 칸의 도시건축을 연구한 서정일(당시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 현 (재)여시재)의 응모작 “소통의 도시”를 선정했다. 루이스 칸의 건축아카이브를 샅샅이 조사하여 소통의 구조에 기반한 도시 건축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은 그동안 서구 건축의 전모를 그들의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연구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관점에서 특별한 평가를 받았다. 4회 수상자는 이강민(당시 건축도시공간연구소 국가한옥센터장, 현 한예종 건축과 교수)으로 그의 연구논문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가 영예의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신진 연구자 발굴의 요람 

1기 위원회 주관하에 여섯 번의 공모에서 3회, 5회 두 번은 당선작을 선정하지 못했다. 5회 수상작을 선정하지 못한 2012년, 사업회는 수상자에게 지급하는 상금을 5백만 원에서 1천만 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신진 연구자들의 참여의지를 북돋고, 수상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높이자는 취지에 기인했다. 그 첫 번째 수혜자는 이연경(당시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학사지도교수, 현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그의 연구논문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이 제6회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2014년 초, 6년의 임기(1회 연임 포함)를 마친 1기 위원회가 해산되고 2기 위원회(심사위원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운영에 있어서 1기 위원회 시기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연구논문 뿐 아니라 저작물 부문으로까지 응모작의 범주를 확장하였다는 점이다.

현재 2기 위원회 활동 중

2기 위원회 출범 후 첫 사업인 7회 공모에서는 당선작을 선정하지 못했고, 8회 공모에서는  “일본 근세 도시사-아키치와 다이치를 통해 본 에도”를 응모한 이길훈(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의 연구논문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9회 공모에서는 “경복궁 궁역의 모던 프로젝트”로 응모한 강난형(문화도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연구논문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10회 공모에서는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하고 지난 해 11회 공모에서는 건축연구소 후암연재의 도연정 대표가 응모한 “한국 ‘근대부엌’의 수용과 전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현재 12회 공모가 진행 중이다.

시상식 직후 열리는 수상자 초청 강연회와 전년도 당선작의 출판기념회는 심원건축학술상의 상징적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이 두 개의 이벤트는 늘상 심원건축학술상의 위원회 구성원들과 역대 수상자가 거의 모두 배석한 가운데 치러진다. 같은 길을 걷는 선후배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를 응원하며 기쁨을 나누는 정겨운 분위기는 그 어느 요란한 강연회와 출판기념회에 견줄 것이 아니다.

심원문화사업회는 이제 심원건축학술상 후속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건축역사학회(회장 전봉희, 이하 건축역사학회)가 2018년에 제정하여 올해 첫 수상작을 선정한 건축역사학회 작품상의 공식 후원단체로 나선다. 이 작품상은 건축의 역사 및 이론과 건축설계 실무 사이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 건축역사학회가 주최/주관하는 건축상으로 매년 건축 및 도시의 역사적 맥락을 뛰어나게 해석하여 적층된 시간의 힘을 창의적으로 드러낸 준공작 중에서 선정한다. 국내 건축역사이론가들의 활약상에 대한 결을 달리 하는 사업회의 후원이 작동하는 셈이다.

심원건축학술상 탄생 배경

끝으로, 심원건축학술상이 만들어진 배경을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짧은 설명을 단다. 건축계와는 전혀 다른 생태계 사람인 사업회 이사장이 어떤 이유로 10년 넘게 이 상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일까. 이사장의 부친이 경영해온 사업체의 경주공장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실무를 담당하게 된 당시 30대 초반의 젊은 건축주는 서울의 대형 설계조직에서 경험을 쌓고 작은 사무소로 독립한 신진 건축사 김광재 대표를 소개받는다. 건축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김 대표는 건축주 측이 외려 미안한 마음을 가질 정도로 그의 설계 서비스는 대가에 비해 늘 넘침이 있었다. 그래서 젊은 건축주는 지나가는 소리로나마 다음 또 다음 프로젝트를 약속했던 것 같다. 그런데 김 대표는 경주공장 리모델링 작업 후 연구동 설계를 진행하고는 완공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갓 마흔 고개를 넘어선 그였다. 김 대표를 통해 건축의 세계에 신뢰를 쌓았고, 언젠가는 그에 대한 보상을 하겠노라 뇌리에 박고 살아온 젊은 건축주는, 본격적으로 경영 전선에 나서는 시점에 이르러, 그 첫 단추를 심원건축학술상으로 꿰기에 이른다. 김광재를 기억하며, 그가 보여준 자기 일에의 헌신적인 태도를 갖추고 꾸준하게 한 길을 파고 있는, 그러나 직임의 중요성과 노력의 강도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서 지원한다는 의미심장한 목표를 세운 것이다.

본문 사진 제공 :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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