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제 건축학과 도입 17년…‘건축사’ 꿈 접는 청춘들

한해 졸업생만 약 2천명, 어려운 공부해 사회 나오지만 현실은 가시밭
 무한경쟁으로 설계비 한 없이 내려가 ‘수익성 악화→저임금’ 악순환
“혼란스런 좌충우돌 정책원인은 전담 건축정부기관 부재가 원인, 청 단위 사령탑 신설 필요”

국내 대학 5년제 건축학과 인기가 갈수록 떨어지면서, 전체 건축학과 졸업생 중 약 55%가 다른 분야로 취업하는 등 건축사의 꿈을 포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은 건축학교육 인증, 실무수련제도, 자격시험으로 이어지는 건축사자격제도 운영 전반을 고찰한 ‘건축사자격제도 운영에 대한 개선방안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보고서의 5년제 건축학과 졸업자 진로현황에 따르면 작년 건축사사무소로 취업한 졸업생 수는 1786명으로 이 중 약 45%만이 설계업무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가장 낮았던 수치는 2013년 27%에 그쳤다. 나머지 졸업생은 건설회사, 공무원, 인테리어 등에 취업하거나 유학, 대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는 2002년부터 건축서비스산업의 세계화를 겨냥해 건축학 교육제도를 개편, 5년제 교육과정을 도입했다. 그 뒤 17년이 흘러 5년제 건축학과 약 60% 이상이 건축의 꿈을 접고 있다.

◆ 건축사사무소 취업
   선호하지 않는 이유
   ①저임금 ②열악한 근무환경

졸업생들이 건축사사무소로 취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①저임금과 ②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이다. 5년간 등록금만 5000만원을 투자해 어려운 공부를 하고 설계사무소에 취업해보지만, 낮은 임금을 받는데다 열악한 환경으로 미래가 불안해 다른 분야로 취업을 선회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 보고서에 따르면 건축사사무소 취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건축사, 건축사보, 실무수련자, 교육자, 학생 집단을 대상으로 각각 조사한 결과 절대적 1순위로 저임금(각각 매우 유사한 55∼56%)을 꼽았으며, 열악한 근무환경도 약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건축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말 그대로 ‘생존 정글’이다. 과당경쟁으로 덤핑 설계가 비일비재하니 사무소 직원들이 임금을 적게 받아 떠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으며, 설계비는 안 오르고 인건비는 매년 올라 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한계상황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학의 건축 관련 학과 학생 수는 오히려 5년제 도입 후 약 2배가량 폭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축 관련 학과 학생 수는 2002년 10,556명에서 2003년 19,086명로 약 80% 가까이 높아졌고, 학생 수는 지속 확대돼 통계자료가 있는 2016년까지 약 2만7천명을 유지하고 있다. 개발시대가 저물고 시장축소에 따른 일자리 감소추세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대학이 건축 학문분야를 1개 학과인 건축공학과로 운영하다, 2002년부터 4년제 건축공학과와 5년제 건축학과로 분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건축연구원 관계자는 “인증원 보고서에 나타난 건축계 현실은 단순히 제도 몇 개를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자격제도 전반의 문제, 건축시장에 누적된 적폐 등 구조적 문제를 손봐야 한다”며 “특히 업무대가면에서 국내 설계비는 독일의 1/5, 영국의 1/3 수준에 머물고 시장에선 불법 자격대여가 횡행해 시장질서를 바로잡아야 하나 딱히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국가 건축정책 결정에 필수적인 자산으로서 건축산업에 대해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통계조차 없는 점, 그리고 전체 주택 중 아파트가 60%를 넘는 가운데 수 천 가구 아파트 설계를 건축사 한 명이 설계하는 상황에서 시장환경에 부합하는 적정 학생 수, 국내 건축사 수요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난안전, 교육, 복지, 에너지, 문화 등 정책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국민 삶과 직결된 ‘건축’을 총괄조정·지휘하는 가칭 ‘건축청’ 신설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자격제도 전반의 문제,
   건축시장에 누적된 적폐 등
   구조적 문제 손봐야

A건축사도 “인증원 보고서를 보면 건축산업 전반의 변화가 있어야 됨을 느낀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주택도 스마트홈 및 1인 가구 증가로 스토리지 기능이 없어지는 등 사회변화에 따라 건축공간구조도 변하고 있다. 건축이 산업전반의 허브역할을 하면서 지식 산업화되고,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개별건축 활성화를 통해 건자재 시장을 일으키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나갈 수 있도록 건축을 전담할 정부부처 건축국 또는 사령탑 신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축 전담부처가 없다보니, 토목·건설에 예속돼 정책이 집행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각종 직군코드나 기업 코드에 건축사가 없는 상황이며, 심지어 교육청은 건축사 직군코드가 없다는 이유로 수당 지급을 거절하기도 한다”고 했다.

요약하면 건축산업이 ▲국민 소득수준·소비성향 변화와 맥을 같이 해 성장하고, ▲건축생산단위는 작지만 각 산업분야를 융합하는 기제(機制)가 되며, ▲이미 국내 사회가 경제중심의 ‘건설’에서 문화중심의 ‘건축’을 중시하는 사회로 바뀌어 산업측면에서도 건축적인 일 처리방식과 판단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건축청’ 신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 정부 의·식·주 중 ‘住’ 총괄하는
   청 단위 정부기관 없어…
   문화중심의 ‘건축’ 중시하는
   사회로 전환돼 산업측면에서도
   건축적 일 처리방식과 판단 요구돼

실제 정부 중앙행정기관 산하에 국민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의·식·주, 세 가지 영역 중 ‘주’에 해당하는 청 단위 정부기관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과거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응해 정부 조직을 개편하며, 관련 분야를 관할하는 청 단위의 정부기관을 만들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역대 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성찰과 전망’에 따르면 정부는 ▲1990년 통계청·경찰청 ▲1994년 중소기업청 ▲2004년 소방방재청 등을 신설한 바 있다.

국가가 국민 주거권을 확보해야 하는 근거로 현행 헌법 제35조 제1항과 제3항을 들 수 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작년 정부가 발의한 ‘개헌안’에도 제35조 제4항에 ‘모든 국민은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주거권이 신설된 바 있다.

또 이번 보고서 상의 열악한 건축계 현실은 건축학과 졸업생 진로현황만 봐도 건축사업계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알 수 있는데, 정부당국이 무대응으로 일관한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B건축사는 “앞으로 신축수요 감소는 상수’이고, 경쟁이 치열해 1995년 주택 설계비가 지금도 오르지 않고 그대로다. 이런 현실 하에서 청년들이 건축을 떠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꼬집으며 “산업전반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핵심에 대한 과감한 메스로 건축산업 미래를 다시 짜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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