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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컨텐츠로서의 건축공간

기사승인 2019.03.04  14: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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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 김우종의 건축생각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작품 감상 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예술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는 것도 컨텐츠만을 통해서가 아니다
즉, 건축적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통해서도
예술적인 감흥을 충분히 전달 할 수 있다

▲ 김우종 논설위원(한국교통대학교 건축학부 조교수, 영국건축사, 영국친환경건축기술사)

최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 성당 앞 지하 공간에 조성된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이 3월 정식으로 문을 연다. 일제가 세종대로 일대를 훼손하고 이곳에 체신국 청사를 건설한 후 국세청 별관 건물로 쓰였던 건물이 사라지고 기존 건물 높이의 3분의 1도 안되는 약 3미터 높이의 평평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다. 사실 이 자리는 과거 조선의 서학당 길과 대한제국의 신작로가 만났던 지점으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 성당이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다. 이제서야 대중에게 그 모습을 제대로 드러낸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라 지은 주황색 지붕과 높은 첨탑, 아치를 포함한 입구를 가진 건물로 주변 덕수궁 돌담길과 잘 어우러져 오래 전부터 명소로 자리했지만 국세청 별관 건물에 가려져 일반 시민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건물로 여겨졌다.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은 광화문에서 시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심장부에 위치한 만큼 세종대로의 역사성과 공공성이 중요한 화두였다. 이를 통해 탄생한 새로운 박물관은 비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쌓인 기억을 통합하는 공간으로 자리할 예정이다. 특히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사는 도시를 비워 내야 된다고 생각한 아이디어인 서울 연대기(Seoul Chronicle)를 통해 역사성과 장소성에 기반한 새로운 공간을 설계했다.

사실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은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는 4,000억 원 규모의 박물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 중 하나로 여겨진다. 2011년 서울시장으로 취임 후 서울 시민의 일상에 숨어 있는 문화 자원을 발굴해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것을 모토로 박물관과 미술관 총 13개를 짓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서울도시건축박물관 또한 완성되었으며, 건축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정책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공예 박물관, 우리 소리 박물관, 민요 박물관, 한식 박물관, 로봇 과학관, 사진 미술관, 한양도성 박물관 등 총 13곳을 짓겠다는 계획에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특히 이미 개관한 박물관은 컨텐츠가 부족하거나 위치 상 찾아가기 불편한 곳에 있어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개관 예정인 한 박물관은 전시품이 충분치 않으며, 1,800억 원을 들여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 부지에 짓고 있는 서울 공예 박물관은 전시할 공예품을 구하지 못해 컨텐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한 서울시가 27억원을 들여 지난해 4월 개관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동대문역에서 내려 창신시장을 지나 오르막길을 10분 이상이나 지나야 되는 곳에 위치해 있지만 정작 그럴싸한 컨텐츠 부족으로 이 또한 혈세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은 시민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과 휴식을 제공하는 가치 있는 장소로 여겨진다. 외국의 사례 또한 이와 비슷한데, 이러한 공간을 대하는 정부 관계자들과 시민들은 미술관 내 컨텐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과 건축적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영국의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현대 미술관(Glasgow Gallery of Modern Art)은 18세기 거상인 윌리엄 커닝햄의 대저택이었던 건물이 리모델링된 후 199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됐다. 건축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이러한 미술관에서 최근 흥미로운 전시가 있었는데 이는 바로 컨텐츠 없는 전시였다.

▲ 글라스고 현대미술관(GoMA) 내부

글라스고 현대미술관은 지역 정부의 예산과 기부로 운영되는데, 최근 정부 예산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다양한 작품 전시 및 컨텐츠 개발에도 지지부진했다. 현대미술과 관련된 새로운 전시를 진행하고 있던 미술관은 2018년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두고 예산 문제로 전시를 취소하게 되었고, 이에 큐레이터는 ‘이 전시는 취소 되었습니다(This exhibition is cancelled).’ 라는 주제로 텅 빈 공간을 전시하는 기획을 하게 되었다. 즉, ‘취소된 전시’를 전시하는 대범한 일을 기획하였고 이러한 텅 빈 공간을 보기 위해 5개월 동안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방문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사실 이러한 해프닝이 주는 의미는 건축사로서 느끼는 바가 남다르다.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작품 감상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예술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는 것도 컨텐츠만을 통해서가 아니다. 즉, 건축적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통해서도 예술적인 감흥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텅 빈 공간과 조용한 산책의 장소는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관람객은 혼자 춤을 연습하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으며 본인 스스로가 예술가가 되어 이 공간을 만끽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미술관이나 현대 건물들은 근대 건축 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공간을 창조해 나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나 안중근 기념관 등 역사적인 맥락을 통해 땅이 가진 기억을 되살리고 다양한 건축 장치를 통해 탈 권위의 수평적 건축 공간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그 자체로 심미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화려한 작품이나 전시물이 없더라도 한번쯤 방문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축적 자산을 다시 한번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급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하고, 무분별한 정보만을 양산하여 시민들에게 주입식으로 전달하는 일방향적 지식은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는 3월 개관하는 서울도시건축박물관도 주변 맥락을 통해 디자인 되어 서울 시민들에게 활용성이 높은 쉼터를 제공하는 장소인 만큼 의미 없는 컨텐츠보다 공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박물관으로 자리하길 기대한다.

 

김우종 논설위원 .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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