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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시작, 강고한 비전이 필요하다

기사승인 2019.02.18  13: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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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석의 건축정책 논단

▲ 박인석 논설위원(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설계용역 가격입찰 금지는 당연한 혁신 과제
정부는 비합리적으로 줄여온 설계행정 투자 정상화하고
건축계는 효과적인 설계자 선정방식·공정한 심사풍토 진작에 지혜와 힘 쏟아야

지난 연말연시에 전해진 뉴스 두 개. 첫째. 기획재정부가 ‘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이라는 예규에 “설계공모 당선자와 수의계약을 체결하려는 경우 공모의 공고문에서 결정된 대가를 감액하여 수의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설계공모 당선자와의 계약에서 관행으로 되풀이되던 ‘수의시담’이 금지된 것이다. 둘째.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되었다. 공공건축 설계 발주에서 공모방식 우선적용 건축물을 설계비 2억1천만 원 이상에서 1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둘 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공공건축 혁신의 일환으로 추진한 과제다. 이 중 ‘설계공모 우선 적용 대상 확대’는 1년 후에야 시행된다. 행정업무가 증가하므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공모 대상 공공건축물이 얼마나 늘기에 그럴까? 공공건축 통계가 미비하여 정확한 산정은 곤란하다.(그래서 건축 통계체제 정비 역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이런 저런 기존 통계들로 추산해보면 설계비 2억1천만 원 이상인 공공건축물은 약 400~500개, 1억 원에서 2억1천만 원 사이 역시 400~500개 쯤 될 것으로 보인다.

한 해에 설계되는 공공건축물 수가 약 9,000개이니 설계공모 건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지만 전체 공공건축물 수에 비하면 10%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나머지 90%는? 여전히 가격입찰로 진행할 것이다. 파출소, 우체국, 작은 도서관 등 동네 공공건축들은 여전히 가격입찰로 설계될 것이다. 그러니 이번 법령 개정은 부분적인 성과일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공공건축 설계용역의 가격입찰을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공공건축 설계용역 가격입찰 금지! 당연한 일인데 막상 실행하려니 이에 따르는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다 설계공모로 한다는 얘기야? 심사는 누가 하나? 심사 공정성을 확보할 자신은 있는가? 행정업무와 비용 증가에 대책은 있나? 이런 걱정들은 급기야 “너무 과한 일 아닌가”라는 주저에 이른다.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자.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은 왜 만들었고 설계공모 의무화는 왜 시작한 것인가. 턴키입찰과 가격입찰로 짓눌린 건축설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였다. 건축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설계를 담보할 수 있는 발주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너무 많다? 그럼 작은 건축은 가격입찰로 해도 된다는 얘기인가? 작은 건축은 대충 설계해도 괜찮다는 얘기인가?

행정업무 증가와 비용 증가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다. 이제껏 가격입찰로 행정력과 비용을 아껴온 일을 오히려 비판해야 한다. 설계비는 공사비의 5% 수준이다. 가격입찰로 얼마나 아낄 수 있다는 얘기인가. 10% 아낀다 해도 전체 공사비의 0.5%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 삶터를 이토록 조악하게 만들어가면서까지 그걸 아껴서 대체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한국 경제가 아직도 그 수준이란 말인가.

가격입찰을 대신할 설계자 선정방식이 모두 설계공모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는 수많은 응모자들이 매번 치러야할 노력과 비용이 너무 커진다. 행정비용 증가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비용 과다가 문제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설계공모 의무화는 임시방편적인 성격이 크다고 해야 한다. 이를 대신할 방법들이 고민되어야 한다. 간이 제안공모방식도 있고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도 있다. 간단한 실적설계 심사로 대신할 수도 있다. 핵심은 설계(자) 질이니 이를 놓고 경쟁하고 선별하는 과정이 있으면 될 것이다. 어쨌든 심사절차가 필요하고 비용증가가 불가피하지 않느냐고? 반복하거니와 행정비용 증가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고민해야 할 일은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설계 질 경쟁 방식과 절차이고, 경쟁에 필연적으로 뒤따를 심사 공정성 문제다. 이들은 건축계 스스로 풀어야 할 내부의 과제이기도 하다.

혁신의 방향과 비전이 정당함을, 그리고 실천 가능함을 주장할 수 있어야 힘이 모인다. 설계 가격입찰 금지는 너무나도 정당하고 당연한 혁신 과제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주저할 일이 아니다. 정부에는 비합리적으로 줄여왔던 설계행정 투자를 정상화할 것을 요구해야 하고, 건축계는 효과적인 설계자 선정방식과 공정한 심사풍토 진작에 지혜와 힘을 쏟아야 한다.

 

박인석 논설위원 .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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