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의 거장 르꼬르뷔지에는 산업혁명의 패러다임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다양한 건축의 형태적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중 건축의 필로티를 언급했는데, 이는 자동차 때문에 출발한 건축 형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의 건축물이 필로티형식이 많다. 이유는 주차장 건축면적과 강력하게 연동하기 때문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차고지 증명제로 되어 건축주가 주차장을 엄격하게 설치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일본에 가면 우리만큼 필로티 건물이 많지 않다. 이런 필로티 건축이 최근 다양한 이슈의 중심에 서 있다. 그중 지진에 대한 취약점의 부각이다.
9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엄청난 재해로 고베의 고가도로가 무너지고, 수많은 가옥들이 파괴되었다. 내진구조에 관한한 세계 제일이라는 일본의 경우도 난생 처음 겪는 새로운 지진 피해는 사회 전반에 대응준비를 하게 만들었다. 이런 대응준비로 지진이후 일본 전국의 건물들은 대대적인 내진 보강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지하기초까지 파서 플로팅(Floating) 방식으로 보강 공사를 한다든지, 탄력적 유압식 구조물을 지하 기초 밑으로 집어넣어 건물을 유지하는 등 기상천외한 공사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경주 지진으로 촉발된 필로티 구조의 취약점은 사실 시공과 부조리한 설계비 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근본적 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여지는 현상이 부상했다. 금가고 무너진 기둥. 건축사도 충격이었지만 대중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지진이후 붉어진 내진에 대한 경각심은 우리 건물들 전반의 구조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논란이 되었다.
뭐가 문제일까? 바로 공사비의 문제다. 내진구조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구조보강에 투입되는 비용이 증가한다. 단순히 공사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구조에 대한 책임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언급이 없다. 엉뚱하게 누가 책임지느냐가 수면위로 올라왔다. 국민의 안전? 당연히 국민의 안전은 지켜져야 하고, 건축의 제1가치다. 관건은 이에 따른 정당한 비용지불이다.
문제는 이에 대해 지불해야 할 건축설계비에 대한 언급은 피한다는 점이다. 책임에 대한 비용지불 없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가? 최저 인건비가 정부 및 시대의 흐름으로 책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최저 기술인력 비용도 요구되어야 한다. 건축에 대한 안전 지식과 감독 역할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건축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건축행위 일체의 총괄 책임을 지는 사회적 책임기술자다. 하루아침에 이들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고, 지식과 경험을 모두 요구해서 국가가 인정해주는 전문가다. 그런데 이들에게 책임은 지우면서 정당한 지식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구조 기술사와 건축사의 지엽적 싸움으로 가야 할 내용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왜 필로티건축이 양산되는지에 대한 법적 문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시간이 걸리면 당장 진행되는 필로티 건축을 책임지는 건축사의 업무대가를 최소한 인정해야 한다.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말도 안 되는 설계비를 지불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고 모든 책임을 다 지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사회다. 정말 건축사들에게 이에 대한 대가 지불 없이 책임을 강요한다면, 구조에 대한 모든 책임 비용을 별도로 책정해서 건축주가 직접 지불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풀릴 문제도 사실 아니다. 현재 구조기술사의 숫자는 인허가 건수에 비해서 현저히 적다. 이미 시장에서는 비면허 구조 기술자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시장상황에서 파이를 키운다면 또 다른 불법 면허 대여가 횡행할 것이 뻔하고, 부실 구조는 더 양산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천천히 가더라도 원칙대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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