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 일을 시작한지 십 수년. 작은 건축사사무소부터 시작하여 중·대형 건축사사무소까지 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일을 했다.
그 결과, 그 중 몇몇은 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정도로 유명해진 건물도 몇 있기에 오가며 마주 할 때면 흐뭇한 미소와 자부심이 가슴에 남았다. 다음번엔 참여자가 아닌 꼭 주도자가 되리라. 그렇게 노력한 대가로 건축사라는 직책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난 품었던 포부와는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주변의 선배 건축사들 혹은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경영난을 겪고 있다. 매일 야근에 가끔 철야인 직업인지라 늘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고객과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올바른 건축물을 세우기 위한 작업 보다는 1∼2평 남짓의 공사비 보다 싼 설계비를 흥정하고 있어야 하며, 건설회사들의 이권 사업에 대한 여파와 건축주들부터의 비난을 듣고 있어야 했다.
행정간소화 취지와는 전혀 다른 오히려 늘어난 행정 업무와 더욱 방대해진 업무들. 그러한 현실에 많은 선배 건축사들은 인건비 절감으로 인한 설계용역으로 대체를 하고 되고, 나 또한 현실에 대한 자괴감으로 작금의 사태에 대한 비난과 한탄만 하고 있었다. 경쟁이 당연한 이 시대에 그러한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도시를 버리고 경쟁이 덜한 곳으로 갔다. 그렇다. 나는 도망자다. 겁쟁이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게 느리고 여유가 있는 작은 마을에서 건축사로 살아가게 됐다. 걸어서 출근하는 길과 여태껏 보지 못했던 마을의 정경, 이웃의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한 소박하고 정겨운 건축물들.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튀는 걸 싫어했다. 그 마을 속에서 이웃과 모나지 않게 튀지 않게 약간의 개성만 표현되어 어울림을 선택하는 사람들. 개성 있고 눈에 띄어야 가치가 생기는 재산으로서의 가치만 보던 내가 삶으로 존재하는 건축물을 보게 되었다. ‘좋은 건축물은 어떤 건축물인가?’라는 물음이 스스로에게 던져졌다.
정답은 없다. 단지 나에게 건축물이 주는 또 다른 의미와 고민이 더 해졌다는 것. 여태 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가 눈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나에게 공부가 된다는 것.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젊은 건축사다.
오가는 길에 마주하며 인사하는 동네 이웃들. 도망자였던 나에게 그들이 되찾아준 내 직업은 “김 건축사! 이제 출근 하는가?”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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