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펜슬 세대들은 연필을 깎을 때 기분을 모를 것이다. 대부분이 경험했겠지만, 연필을 깎을 때는 명상을 하듯이 다른 생각을 접고 연필에만 마음이 집중된다. 팔각형의 연필이 모나지 않고 둥글게 되도록 처음에는 쓱~쓱~ 두껍게 깎다가 연필심이 노출되면 그때부터 살~살~ 살점이 많이 깎이지 않도록 집중을 더한다. 이 때 은은한 연필 향은 살짝살짝 코를 자극하므로 마음이 차분해지며 머리도 맑아지고 집중력도 좋아진다. 바쁜 일상 중에서 잠시라도 편안하게 집중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공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연필 깎기를 좋아했다. 연필향나무에서 나는 은은한 나무 향기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그 향기는 심리적으로 평온함을 준다. 목재 성분 중에는 흥분되거나 격앙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진정(鎭靜)효과가 있다. 이러한 성분은 진정효과 외에 냄새를 제거하는 소취작용, 집먼지진드기의 퇴치작용, 살충 작용, 곰팡이 항균작용 등 많은 효과가 알려져 있다.
최근 목재를 이용한 의학실험에서 목재를 손에 올려놓고 혈압과 심전도를 측정한 결과, 혈압이 내려가고, 심전도가 안정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목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조차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최근 일본생리인류학회에서는 건축 재료에 따라 사람은 어떤 인상을 느끼고, 신체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조사한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남자 대학생 20명을 피실험자로 다양한 목재와 금속을 만지면서 90초 간격으로 혈압을 측정했다. 그 결과 금속을 만졌을 때는 한번 오른 혈압이 시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고 긴장상태가 계속됐다. 반면 목재의 경우는 처음에는 모두 혈압이 올라갔지만 곧 떨어지면서 원래의 혈압으로 돌아오고 마음이 차분하게 안정되며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릴랙스(relax)한 상태로 돌아갔다. 또 생후 1~4개월 된 아기에게 목재성분인 α-피넨 냄새를 2분간 맡게 했을 때 아기 심장의 박동이 안정되었고, 질 좋은 무취의 공기를 맡았을 때와 거의 유사한 패턴으로 심장 박동에 변화는 없었다. 목재에서 방향되는 α-피넨 등의 냄새가 혈압, 맥박 수를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몸이 나무 냄새를 맡으면 편안함을 인식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건축 재료의 「쾌적성」은 신체의 리듬과 동조한다. 일상적으로 ‘주파수가 맞는데…’라거나 ‘분위기가 좋은데…’라고 느낀다면 사람은 그 곳의 환경에 동조되고 있다. 집은 가족이 쉴 터전이며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자리이다. 한자로 ‘쉰다’라는 ‘휴(休)’자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양이다. 우리 인간은 먼 옛날부터 나무를 옆에 두고 휴식을 취했던 것이다. 목재는 인간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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