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과업 2회 유찰, ‘적격여부 평가 후 7월까지 실시설계 마무리 할 것’

일제강점기에 훼손되고 철거된 대한문 월대 복원을 위한 설계가 이달 착수된다. 대한제국 당시 황궁인 덕수궁의 정문 역할을 했던 대한문이 비로서야 제 모습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이하 덕수궁관리소)는 대한문의 면모를 되찾고자 이달 중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月臺)를 재현하는 설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본지와 유선전화에 나선 덕수궁관리소 관계자는 “대한문 월대 재현 설계 입찰이 2번 유찰됐다”면서 “규정에 따라 단독계약서 평가를 10일에 개최하고, 적격여부가 가려지면 수의계약을 통해 이달 중 설계에 착수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과업을 통해 7월까지 대한문 월대의 재현 방안을 기본설계, 실시설계 도면 및 도서로 제시하게 된다”면서 “고증과 분석된 월대의 원형과 재현 방안을 바탕으로 관계전문가 자문회의 검토가 이뤄지고, 내년까지 대한문 월대 재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고 소개했다. 덕수궁 대한문 월대 재현 설계에 따른 예산은 3,152만 원이다.

▲1902~1903년경 촬영된 덕수궁 대안문(大安門) 월대. (사진= 이돈수 이순우 저,꼬레아 에 꼬레아니 사진해설판, 2009)

일반적으로 월대(月臺)는 궁궐의 정전과 묘단, 향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를 말한다. 덕수궁 대한문과 경복궁 광화문, 창덕궁 돈화문 등 궁궐의 정문과 덕수궁 중화전을 비롯해 경복궁 근정전 등 주요 정전에 설치돼 건물의 위엄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궁궐 정문 구성의 필수 요건이다.

덕수궁관리소는 태평로와 시민들의 보행로 활용 등 여러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월대를 원위치에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원위치와 형태, 크기에 대한 철저한 원형고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재현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덕수궁관리소에 따르면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고,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의 기록으로 보아 1898년경부터 지은 것으로 파악된다. 또 대한문의 월대는 1899년에 공사가 시작돼 1900년에 월대를 새로 고쳤다는 기록(‘각사등록’, ‘각부청의서존안’)이 전해져 적어도 1900년 전에 대한문 월대가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970년 태평로 확장으로 인해 원래 위치에서 33미터가량 물려서 현재 위치에 있게 됐고, 지난 2005년에는 대한문 기둥과 지붕, 벽체 수리와 구조 안전 진단이 진행된바 있다. 대한문의 월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의해 훼손‧철거됐다. 현재는 월대 끝 부분에 있었던 석수(石獸, 짐승의 형상을 돌로 새겨 만든 것)만 남아있다.

덕수궁관리소 관계자는 “월대는 고종이 환구단이나 왕릉으로 행차할 때 사용했고, 1910년 대한제국의 명운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궁궐의 정문에서 격동했던 근대사의 한가운데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면서 “월대의 재현은 일제의 의해 훼손되고 지워진 우리의 역사를 되찾고, 오늘날 우리들의 품에 되살리는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우리 궁궐의 원형을 연구하고 복원해 더 많은 국민이 대한제국의 황실과 황궁의 문화를 이해하고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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