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남 건축사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전화, 발주처(건축주) 응대와 디자인·설계 진행, 직원 교육, 스스로 직원 몫까지 해야 하는 상황까지….
젊은 건축사 계급장을 곧 내려놔야 하는 필자의 지난 짧은 건축인생을 생각해보면 ‘너 참 고생했다’라고 스스로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한편 앞으로 중간적 역할을 해나가야 할 입장에서 책임감도 앞선다.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려가야 하는 이 시점에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됐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설계자의 삶이 전부였다. 그때 느낀 고충을 통해 여러 문제들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건축설계도 수많은 용도와 방식이 있지만 모두 나열하기에는 너무 방대하므로 논하고자 하는 대상을 우리 생활과 밀접한 소규모 공공프로젝트로 한정하려 한다.

입찰이나 수의계약, 설계공모 등을 거쳐 계약을 하려고 하면 첫째,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공사비 산정 근거가 없을 때가 많다. 두 번째, 과업지시서는 어떤가? 몇 천 만원 단위의 설계비 프로젝트인데, 수억 원짜리 설계 과업 지시서를 복사·편집해서 공고하는 경우도 있다. 세 번째, 발주처 담당자는 다른 부서에서 새로 오거나 전문성이 없는 경우도 예삿일이다. 계획설계에, 보고에, 기본설계, 실시설계를 하는 과정들을 거쳐 설계를 마무리할 때쯤 되면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도 경험하게 된다. 이후 설계 과정을 다시 설명하고, 계획안에 대해 설득하는 과정은 건축사의 몫이다. 또 표준품셈에 의한 내역작업을 할 때 공사비에 여유가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며, 대부분의 공사비는 130~150% 정도로 나오는데 설계용역은 재료의 스펙과 설계를 변경하는 제2의 전쟁을 치러야 마무리된다.

시공사 선정 이후 현장에서는 전화가 빗발친다. 감리용역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설계 상 실수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간단히 처리할 문제들이다. 감리자는 책임 소지만 따지고 뒷짐을 지는 자세를 취한다. 시공자는 발만 동동 거리며 난감해하거나 설계변경을 위해 기회를 보고, 현장에서 풀어나가야 할 사항들에 설계자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이러한 드라마 같은 과정을 거쳐 건축물이 탄생하는데, 문제는 상기 설명한 설계 과정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건축사의 역량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건설 시장 저변에 깔려있는 건축사의 무거운 책임감과 그에 따른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들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난제를 안고 있는 건축환경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첫 번째 경우는 발주처의 초기 사업기획 업무를 할 때 적정한 공사비를 판단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건축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검토하거나, 그런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큰 사업의 경우 공사비가 적절한지 여부를 어려 단계에 거쳐서 심사하는데, 소규모 프로젝트들에도 그러한 장치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과업지시서의 문제로서 이 또한 해당 프로젝트에 맞는 과업 범위가 선정되어야 한다. 설사 과업지시서대로 공사비가 책정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계약된 설계자와 재검토한 후에 증가되는 부분만큼 설계비 또한 함께 연동되게 명쾌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조사한 백창용 건축사의 자료를 보면, 예정 공사비와 설계비 산출 내역의 투명화, 사전 공개, 각 단계별 의사결정의 명분화를 통한 설계 변경. 조건 현실화, 최소화 등을 강조하고 있는데, 100% 공감한다.

셋째, 발주 담당자도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순환 보직이 되도록 하는 등 발주자의 순환 보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는 건축에 울고, 건축에 웃는, 건축을 위한 사람들이다. 하천이 맑아지면 새들이 다시 찾아오듯이 우리의 터전, 보금자리를 먼저 정비하는 게 우선이다. 모두 다 힘든 시기이지 않을까 싶다. 한 번쯤 심호흡을 한 뒤 한 목소리로 우리의 터전을 정비해 더 나은 건축환경이 도래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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