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혜 건축사

건축학도일 때는 건축에 열정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개념을 잡고 구상하는 일련의 건축 과정이 흥미롭고 그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으니까 분명 그랬다. 그런데 배움의 갈망과 필요에 의해서 자격증들을 취득하고 보니 어느덧 세월이 훌쩍 지나갔고, 필자의 열정은 답이 있는 기술에 투자한 시간에 반비례해서 어느덧 흐려져 있었다.

여러 자격을 갖추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2년 전 사무소를 개소하였다. 그런데 직접 사무소 대표가 되어보니 선 하나 긋는데 무척 고민스럽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진짜 필드에 나갔구나!”하고 실감했고 잠 못 이루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질문 1. 계약까지 연결하는 방법이다. 사무소 초기에 건축주와 미팅을 할 때였다. 필자가 생각하는 건축 안을 그저 설명·설득하느라 건축주가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중에도 없었고 심지어 전문가랍시고 언쟁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건축사의 역할은 건축주의 희망과 욕망을 주어진 땅에 순응할 수 있도록 기술로 구체화시키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가끔 놓치고 미팅할 때가 있어서 지금도 아차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질문 2. 도면대로 건축물이 준공 나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최종 도면을 납품하면 설계자로서 소임을 다 한 줄 알았다. 그런데 시공자 선정부터 사용승인이 나고 나서도 끊임없는 질문에 자문을 했고, 현장에 자주 가고, 관계자들을 조율했다. 덕분에 턱없이 부족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절실히 느끼며 공부해야 했고 선배 건축사님들의 경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질문 3. 필드에서 놓칠 수 있는 현시대가 요구하는 주제에 대한 것이다. 치열하게 경력을 쌓으면 기술 전문가가 된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주제를 모른 채 하고 시대에 맞은 건축을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은 일 대신 사회를 위한 건축 일에 아직은 투자를 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 첫 구절은 ‘도가도 비상도’로 시작된다.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항구적인 도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모한 선택일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자신만의 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 생각한다.

질문 4. 건축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재빠르게 응용할 수 있는 인터넷 정보만으로 필자의 언어를 치장하는 것은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기 힘들 뿐 아니라 건축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갈 묵직한 사고를 세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물의 디자인과 공간들의 생성된 역사가 궁금해서 서적을 뒤적이고 지속 가능한 건축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아 헤매며, 목적이 건축답사가 아닌 우연성을 경험하는 진짜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항상 지도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그 이유는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환원을 시켜야 비로소 통제 가능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즉, 좌표가 잡히지 않는 시·공간은 ‘공포’다. 도무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는 인간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건축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실체 없는 꿈을 좌표 삼아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한가득 질문을 던지며 흐려진 건축 세포를 깨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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