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직업정보에 ‘건축설계사’ 등 건축사 유사명칭 난무, 일부 지자체 ‘설계 프로세스’ 무시까지

· ‘건축사’ 직능에 대한 명확한 정의 필요
· 법제도 용어 둘러싼 혼동 해결돼야

건축사법 제12조(유사명칭의 사용 금지)는 건축사 자격 명칭 사용을 제한한다. 전문성을 갖춘 건축사에게만 건축설계 및 공사감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함인데, 건축사가 수행하는 업무가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및 재산을 보호하는 공공성을 띄며,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건축사가 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사에게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건축사법은 이외에도 ▶ 무자격자에 대한 자격업무 종사를 제한하고(제4조) ▶ 명의 대여 등을 금지하며(제10조) ▶ 이를 강제하기 위해 형사처벌을 위한 벌칙규정(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과 행정벌을 부과하는 과태료 규정을 두고 있다.(제39조의2, 제41조)

이처럼 법에서 ‘건축사 유사명칭 사용 금지’를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 각 소관부처는 건축사의 명칭, 직능에 대한 해석을 달리해 제멋대로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워크넷(work.go.kr)의 직업정보에서는 건축사 명칭이 ‘건축가(건축설계사)’로, 한국직업전망은 ‘건축가(건축사)’, 한국직업사전은 ‘건축설계사’로 천차만별이다. 설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축사, 건축가, 건축설계사 간의 경계도 모호하고 헷갈리지만, 해석 또한 엉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국토교통부와는 별도로 건축사의 직능을 문화의 한 분야로 보고, ‘젊은 건축가상’이라는 건축물 시상제도 등을 운영 중이다.

이는 건축정책을 관할하는 정부부처조차 건축사의 정의와 직능에 대한 이해가 바로 서 있지 않음을 방증한다. 호칭 문제는 때때로 혼란을 넘어 관계를 손상시킬 수도 있으며, 직능의 왜곡된 형태들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건축물의 최종 사용자이자 소비자인 건축주가 입는다. 일례로 최근 유사명칭 사용으로 피해를 봤다는 정모씨가 본지에 전화를 걸어 “분명 건축사인줄 알고 계약금까지 건네 건축설계를 진행했는데, 나중 공사를 하려니 법적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됐다”며 “수소문해보니 주변에 이런 피해를 입는 사람이 더러 있더라. 그동안 진행했던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A건축사는 “정부가 법과 절차를 준수해야 함에도 오히려 유사명칭 사용을 부추겨 혼란을 조장한다”며 “도대체 법과 제도에 대한 의식이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건축 관계 법령 및 제도개선도 중요하지만, ‘건축사’ 직능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함께 ‘건축가’ 용어정의도 정립되어 법제도 용어·명칭을 둘러싼 혼란과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실 건축사들이 추구하는 직능에 대한 정의도 법제적으로 완전하지 않다. 건축사법은 1962년 1월 20일 건축법이 제정되고 2여 년이 지난, 1963년 12월 16일 제정됐다. 법 제1조 목적에 이어 제2조(정의)에서 ‘건축사’를 “국토교통부장관이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으로서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 등 제19조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로 정의한다.
건축물의 안전과 더불어 부분적으로 예술에 기원을 두고 문화적 속성을 가진 건축을 통해 국가·사회에 기여하는 건축사의 사명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의무내용이 명확하거나 충분치 못하다.

건축사와 불과분의 관계로서 ‘건축사의 역할과 책임 등’을 규정한 ‘건축법’은 건축사가 행하는 작업으로서 건축에 대한 정의 없이 ‘건축’을 “건축물을 신축·증축·개축·재축하거나 이전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수행한 ‘건축사의 호칭과 업무의 제도적 형성에 관한 연구(2015년)’에서도 “건축법에 따른 ‘건축’의 정의는 대상으로서의 건축물, 행위로서의 건축공사라는 범위를 규정하지만, 건축사의 작업으로서 건축의 정의가 없다”고 밝힌다. 이는 ‘건축기본법’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변호사, 의사의 경우 각각 변호사법 제1조(변호사의 사명), 의료법 제2조(의료인)에 따라 능동화법으로 법 제일 첫 장에 변호사와 의료인의 사명이 언급된다.


◆ 사회적 직능으로서 ‘건축사’ 정체성
   바로 세우기 위한 고민 필요

건축사의 직능이 명확히 정의되지 못하면 결국 사회적 계약으로서 관련 법제(法制)와 정책에 ‘건축, 건축사’의 직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은 당연한 결과로 귀결된다. 일례로 ▲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상 실비정액가산식에 따른 대가산정에서 ‘엔지니어링 노임단가’를 준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건축이 ‘건설’의 한 분야로 인식될 수 있다. 또 ▲ 정부기관 및 산하단체, 네이버·다음 등 포털 인물정보에 건축사 ‘유사명칭’이 표기되고, ▲ 공무원의 경우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4조(특수업무수당)에 따라 기술사, 기능장, 기사에게 기술정보수당이 지급되는데, 정작 ‘건축사 자격’은 제외돼 있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심지어 네이터 포털에는 제도적 맥락이나 건축사의 사회적 책무·사명에 대한 설명 없이 건축사법상 ‘건축사’ 정의를 그대로 인용한다. 건축사들이 추구하는 직능과 사회적 인식의 간극이 커질 수밖에 없는 한 단면이다. 국가와 사회적 직능으로서 ‘건축사’의 정체성을 바로세우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두고 국가적으로 건축사 명칭 정의 정립을 위한 연구, 건축사 업무 홍보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높다. 건축사법상 ‘건축사’의 정의는 1963년 제정된 이래 60여 년이 지났지만, 제정 당시 정의 그대로다. 57년 전 건축사제도가 전후 도심복구·재건 과정에서 전문가에 의한 책임과 국가적 필요에 따른 결과였다면, 이젠 시대적 요구에 걸맞는 ‘건축사’의 정체성 확립,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B건축사는 “각 지자체, 산하단체, 그리고 일선 심지어 구청조차 건축설계 프로세스를 몰라 사무공간 디자인 시 관내 인테리어 시공업체·디자이너와 먼저 접촉해서 법적 책임이 없는 걸 알고 나중 짜맞추기식으로 건축사의 도장을 받는 경우도 많다. 지방도시는 더 심각하다”며 “설계자, 계획가, 디자이너, 건축가 등의 용어가 일반명사로 다양한 분야에 혼재돼 있는데, 행위와 행위자 사이의 언어적 결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건축사 정의 관련해서는 국제건축사연맹(UIA)의 Architect(건축사)의 정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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