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자격제도가 시행된 지 60년이 다 돼 간다. 국가가 발전하고, 사회의 수요와 필요가 늘어남에 따라 건축시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무나 시작했던 집장사 수준은 점차 건축과 건설의 규모로 커지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벌어졌고, 전문가라는 존재가 필요해졌다.

‘건축사’는 여타 전문직처럼 국가에서 공인된 자격으로 까다로운 선발 절차를 거쳐 주어진다. ‘의사’,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등 산업 사회에서 필요한 각 분야별 책임지는 이들을 하나 둘씩 만든 것이다. 건축사 역시 이런 선발 절차를 거쳐 국가가 인정한 자격이며, 가장 큰 핵심은 국가가 책임을 준만큼 권한도 부여한 것이다. 건축에 대한 최고의 전문자격이다.
1950년대 이후 산업화를 시도할 때까지 학문적, 제도적 준비를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국가는 책임질 누군가를 필요로 했고, 그들이 건축사였다.

건축사는 건축 설계 및 건축에 관한 법적인 의사결정 구조의 최정상에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회의가 들고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뭔가?
2018년 충청남도의 한 건축사로부터 하소연에 가까운 호소를 받은 적이 있다. 그의 하소연은 ‘건축사’자격수당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자격자도 자격수당을 받고 있지 않는 것으로 오해했지만, 조사를 해보니 다른 자격자, 각종 기사는 자격수당을 받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건축 기사 자격도 급여 기준에 자격수당이 존재하는데, 건축사가 없다는 것에 황당했고, 즉시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전면에 관련 내용을 게재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도록 건축사 자격수당을 받게 되었다는 후일담을 듣지 못했다. 더 가관인 것은 법적 자격인 건축사가 존재하지 않는 직업 명칭으로 각종 정부 공문서에 등장하기도 한다. ‘건축설계사’나 ‘설계사’는 또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하고 정의를 내려도 이해 안 되는 명칭이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버젓이 국가 기관에서 발행하는 지침이나 프린트물에 등장한다.
유사 호칭은 또 어떠한가? 이미 오래전 영국과 미국은 건축사(가)에 해당하는 직업명·자격이름을 Architect로 했으며, 제도를 통해서 유사 호칭이나 무자격자의 용어 사용을 법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영어 Architect는 국가로부터 자격 받지 않은 누구도 사용할 수 없고, 이는 정부로 부터 자격을 부여 받는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 ‘건축설계사’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건축가라는 호칭정도는 법안으로 들여와야 한다.

용어만 문제가 아니다. 업무의 과정을 보면 더욱 더 가관이다. 최근에는 건축 관련 발주를 정부나 지자체 등의 다양한 부처가 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 및 인테리어를 포함한 공간 디자인 전 과정 기본 프로세스가 설계를 하고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시공자나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먼저 의뢰하고 나중에서야 부랴부랴 건축사를 찾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을 한참 진행, 집행하고서야 법절차를 어겼음을 발견한다. 그들이 먼저 의뢰한 이들은 설계에 있어서 결코 법적인 책임질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건축사가 2만4,000명을 돌파하고, 더 많은 건축사를 뽑을 예정인 정부 내 건축사를 다루는 전문 건축공무원이나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구 6,400만의 영국은 총 5만 명의 건축사를 확보하고 있고, 인구가 3억2,000만인 미국은 10만 명 수준이다. 영국과 미국 모두 국가로부터 자격을 받지 않은 경우 Architect라는 직업명을 사용할 수 없고,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행정부의 각 조직과 지자체들은 과연 건축사를 인정하는 법의식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이젠 행정부를 포함한 국가는 2만5,000명의 건축사와 미래 건축사들인 건축사보, 그리고 건축대학의 학생들에게 대답을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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