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주 건축사

얼마 전 기장 웨이브온을 표절하여 소송이 제기된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사진을 보니 외관뿐만 아니라 공간구성, 재료, 인테리어 심지어 조명기구, 가구배치까지 완벽한 판박이로 마치 재현을 해놓은 듯했다. 한 기사에서 언급된 건축주의 요구조건은 다름 아닌 “웨이브온과 똑같이 해 주세요”였다. -기사에서는 인테리어를 똑같이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되어 있었지만 결과물을 보면 인테리어뿐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담당 건축사는 이러한 건축주의 요구를 담담히 수행했다. 또한 “웨이브온의 존재를 모른 채 외관만 설계한 것이며 소송이 제기된 건축물은 전체 3개동으로 이뤄질 전체 건축의 메인 동에 해당하며 양 날개에 해당하는 건축물까지 완공되면 형태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황당한 해명을 했다.(인터뷰 내용/주간동아 ‘건축 표절 시비에 새 이정표 세워질 소송’ 발췌)

사실 건축주의 씁쓸한 요구들은 앞선 사례 표절과 더불어, 무조건적인 최대 수익성 창출, 준공 후 불법 세대 개조 등 실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 모든 요구의 근본적 원인은 돈 하나로 수렴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없으나, 목적이 아닌 수단이 비윤리적이 될 때 이윽고 문제는 발생한다. 그리고 건축주의 수단은 이따금씩 이기적이다.

이와 더불어 일부 건축사가 이기적 건축주의 요구를 강력히 거절 못하면서 결국 문제들은 수면위로 드러나게 된다. ‘이런 건축물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준공 후의 일이니 나와는 상관없다’, ‘지인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지’ 등의 작은 생각이나 착각을 위안 삼아 건축주의 이기적 욕망을 조금씩, 조금씩 실현한 것이다. 이기적 건축주는 건축사의 산물을 등에 업고 ‘다른 건축사는 해 주던데’를 앞세워 명맥을 이어왔다. 결국 이기적 건축주는 건축사가 낳은 것이다.

건축사가 되면 건축사 윤리선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여야 하며, 그 내용을 준수하여야 한다. 건축사 윤리선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건축사는 지구환경을 보존하고, 사회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한다.
2. 건축사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며, 건축문화 창달과 건축교육 발전에 기여한다.
3. 건축사는 공공사회 발전에 기여하며 법규를 준수한다.
4. 건축사는 자신의 전문지식과 능력을 발휘하여 정당한 방법으로 수탁하고 문서로 계약한 업무에 대하여 책임과 의무를 이행한다.
5. 건축사는 명예를 존중하고 의뢰인과의 신뢰를 유지하며 의뢰 내용을 존중한다.
6. 건축사는 정직하게 업무를 수행하며 동료 건축사의 수임업무와 지식재산을 존중한다.
7. 건축사는 인종·종교·장애 등 사회의 여러 여건에 대해서 공정한 입장에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8. 건축사는 정당하게 사무소를 운영하며, 적정한 실무수련 여건을 마련하고 유지한다.

1번(지구환경을 보존, 사회공동체의 삶의 질 향상), 2번(건축문화 창달), 3번(공공사회 발전에 기여), 6번(정직, 지식재산 존중), 7번(사회 여러 여건에 대한 공정한 입장) 총 8개 항목 중 5개 항목에서 건축사의 공적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개인 의뢰 내용을 존중하는 것 위에 도시, 사회, 사회구성원에 대한 존중이 있는 것이다. 건축은 세워짐과 동시에 도시에 내던져진다. 개인이 소유하지만, 사용하고 영향을 받는 것은 개인보다 공공이 더 큰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그렇기에 이기적 건축은 언젠가 공공의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 건축물대장 상 없는 집을 계약하여 피해를 입기도 하고,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의 집 거실의 따뜻한 햇살을 앗아가기도 한다.

건축사는 단순히 한 개인의 요구만을 귀 기울여서는 안 된다. 처음 건축사가 되었을 때 윤리선언서에 새긴 서명에 책임을 다하고, 그 내용을 잊지 않아야 한다. 괜찮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아주 사소한 것부터 바꾼다면 틀림없이, 이기적 건축주는 사라지고, 도시가 더욱 상냥한 건축들로 채워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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