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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완벽하게 ‘공간’에 기생했다

기사승인 2020.02.12  16: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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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본상·국제극영화상·감독상·작품상으로 아카데미 휩쓴 영화 ‘기생충’과 건축 이야기

▲ 영화 ‘기생충’ 속 박 사장네 저택.(사진=전주영상위원회)

군더더기 없이 우아하다. 그 간 우리가 알던 부잣집과는 살짝 다르다. 노골적으로 과시한다거나 촌스럽게 화려하지 않다. 유명 건축사가 지은 집에 젊은 가족이 산다는 설정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평온하다. 비밀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 우뚝 솟은 삶, 낮게 고여 있는 삶,
   보이지 않는 삶

▲ 박 사장네 저택 아래 지하벙커로 이어지는 입구.(사진=CJ엔터테인먼트)

박 사장(이선균 役) 가족이 사는 집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 대문을 열고 다시 계단을 올라가야 나타난다. 절제된 컬러와 자재를 사용한, 크고 반듯한 2층 주택이다. 내부는 톤 다운된 색상의 대리석과 큼지막한 원목 가구들로 꾸며졌다.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거실 통유리 창문은 그 집에서 또 하나의 매력적인 인테리어다.
반면 기택(송강호 役)의 집은 ‘냄새’로 정의할 수 있다. 그곳은 물론이고 이웃들이 사는 골목까지 ‘지하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한다. 모든 것은 낡고 때에 절어 있으며, 창문으로는 사람들 다리가 보인다. 폭우가 쏟아져도 흘러내려갈 공간이 없어 사람들이 대피해야 한다. 빗물은 퍼내도 줄지를 않는다. 오래된 빵에 핀 곰팡이처럼 생겨먹은 반지하 집, 그곳이 기택 가족의 공간이다.

▲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 집. 창문으로 사람들 다리가 보인다.(사진=CJ엔터테인먼트)

한편 보이지 않는 집도 있다. 박 사장네 집 아래 설계된 지하벙커는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지하벙커란 본래 위급 시 대피할 목적으로 마련된 비밀 공간이니 그럴 듯하다. 하지만 집주인도 모르는 공간이라는 점은 어쩐지 수상하다. 지하벙커는 1968년 북한 청와대 습격 사건을 계기로 1970년에 건축법(제22조의 3<지하층의 설치>)이 개정되면서 본격 등장했다.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 시 모든 신축 저층 아파트 지하를 벙커로 사용하는 것을 의무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반지하 공간을 임대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주택 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는 반지하 공간을 거주 시설로 합법화했다. 이후 반지하에서도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영화 속 지하벙커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쫓겨 그곳까지 기어들어간 박 사장네 가정부 문광(이정은 役)의 남편 근세(박명훈 役)가 지하벙커 아니 그 집의 실질적인 터줏대감이다. 지하벙커는 창문 하나 없이 음침하고 눅눅하며, 변기부터 침대, 책상까지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은 창피함을 모르고 한곳에 있다. 그곳의 장점이라면 콘크리트로 지어져 튼튼하다는 정도일까. ‘대피용’인 본래 용도를 생각하면 근세라는 인물은 나름 그곳에 적합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불법으로 살고 있다는 점이 문제긴 하겠지만. 그런데 근세가 살고 있는 그 공간, 기택 가족이 합법적으로 살고 있는 반지하와 묘하게 닮아 있다.

◆ 공간을 아는 사람들

영화에 등장하는 집들만 살펴봤을 뿐인데 어쩐지 스토리가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 영화 ‘기생충’이 건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실제 봉준호 감독은 여러 부잣집을 연구하고 박 사장의 집 평면도에 직접 내부 디자인을 하는 등 공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곳 세트장이 1층 약 1,818㎡(550평대), 2층 826㎡(250평대) 규모였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하준 미술감독을 비롯한 미술팀, 소품팀 등 제작진들은 기택네 반지하 집을 위해 재개발 지역을 돌며 다세대 주택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옛날 타일, 문짝, 새시, 방충망, 유리창 등 소품을 구하느라 적잖이 발품도 팔았다. 그 결과 50미터 규모의 일산 세트장에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 20여 동 40가구 집들이 들어찼다.

제대로 설계된 공간에, 현실을 꿰뚫는 감독의 안목과, 공간을 아는 제작진들, 맞춤옷을 입은 듯 능청스런 연기를 펼친 배우들의 노력이 박자를 맞춘 덕에 영화의 주제가 더 입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다.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에서 4개 상을 휩쓴 후 영화에 이어 세트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고양시는 부랴부랴 ‘아쿠아 특수촬영 스튜디오’에 지어졌던 기택네 집을 복원한다고 발표하고 계획에 착수했다. 전주와 안성에 지어졌던 박 사장네 집은 스포일러 예방 등 여러 사정 때문에 철거된 상태다. 하지만 영화가 증명한 ‘창의성’은 전 세계 영화계에 영원히 남게 됐다.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창의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에 흐르고 있다.

▲ 영화 ‘기생충’ 박 사장의 집 1층 세트장.(사진=전주영상위원회)

관련 글=월간 건축사 ’19년 7월호 영화 속 건축이야기 <인간성 상실의 ‘시대 우화’ 기생충>
(링크)
_http://kiramonthly.com/the-fable-of-the-time-when-humanity-is-being-lost/http://kiramonthly.com/the-fable-of-the-time-when-humanity-is-being-lost/

이유리 기자 leeyr87@nate.com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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