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수목’은 도시자산이자 히스토리! 아파트 재건축 때 40년 넘은 나무를 싹둑 잘라내야 할까?

· 아파트 재건축 때 건물과 함께 40년 넘은 ‘나무’ 대부분 폐기
· 도시자산으로서 ‘나무 살리기’ 나서야…
· 수목 보존 위한 법제화 마련 필요

▲ 재건축 前 둔공주공아파트(사진=서울특별시)

서울에서 국내 최대 규모 통합재건축단지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서울시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면적 62만6232제곱미터(1만2032가구) 규모로 올해 4월 분양을 앞두고 있다. 2017년 관리처분인가 이후 그해 7월 이주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전체 수목 3만 3094그루가 단지 내 자리했던 곳인데, 30~40년 아파트와 세월을 같이 하며 울창한 숲을 이루던 수목은 재건축 과정서 대부분 베어져 사라져버렸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재건축 조합이 일부 나무를 별도의 공간에 식재했다 공사가 끝난 뒤 다시 옮겨심기로 했지만, 그 수가 전체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옮겨 심을 자리를 마련해 기존 나무를 이식하고, 재건축 후 다시 단지 안에 옮겨 심으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서다. 30∼40년 된 거목은 크레인을 써 들어내야 한다.

아파트 재건축의 경우 기존 단지 내 수목은 헐리는 건물과 함께 대부분 폐기되는 운명에 처한다. 서울과 신도시 재건축을 앞둔 곳은 30~40년이 지나 단지 나무들은 보통 아파트 7층, 8층 높이까지 올라간다. 누구에겐 학창시절,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아름드리 나무들이지만, 옮겨심는 게 돈이 더 든다는 이유로 잘려나가는 셈이다.

서울의 또 다른 재건축 단지인 개포주공단지. 개포주공 2단지와 3단지가 재건축을 마쳐 작년 입주민을 맞았다. 최근 4단지(3375가구)가 분양을 진행했다. 개포주공단지는 82년 준공 당시부터 메타세콰이어, 향나무, 소나무, 은행나무가 거목으로 자라나 울창한 자연림을 이루며 주민들과 세월을 같이 한 곳이다. 그런데 전자와 마찬가지로 비싼 이식 비용 등으로 대부분 폐기됐다.

단지 주민이었던 이모씨는 “단지 내 시원한 여름과 단풍으로 물들던 가을 풍경을 잊지 못한다. 단지 내 살아본 사람만 안다”며 “비용을 들여서라도 지키고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데, 몇십 년 동안 예쁘게 자란 나무들이 한 순간 사라졌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 나무들을 보존하면서 재건축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국내는 가로수, 아파트 단지의 나무 등 도시 수목에 대한 보호책이 해외처럼 견고하지 않다. 일본, 영국은 사유재산 침해소지에도 불구하고 민간 사유지 고목을 공공에서 상설점검을 통해 보호수로 지정할 수 있으며, 건물을 개발할 때 보호수를 건드리지 않고 보존한 채 집을 지어야 한다.

현행법상 아파트 재개발·재건축 때는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수목 식재계획을 세우게 돼 있다. 가로수는 각 지자체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에 따라 관리가 된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법 제42조(시·도 조례에 따른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필요 시 지자체 조례에 근거를 두고 건축물에 적용된다. 서울시는 2002년부터 연면적 10만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 사업면적 9만제곱미터 이상 30만제곱미터 미만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을 대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평가항목에는 수목 식재계획을 통해 기존 수목에 대한 현황조사 결과와 재활용 수목(이식)을 포함한 조경 식재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이 실태조사를 통해 수목보존 등을 허가조건 중 하나로 권고하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2017년 재건축조합에서 수목 활용 계획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자문을 받은 뒤 제출토록 하는 방향으로 조례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개선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미세먼지에 갇힌 한국,
   인구밀집해 생활권 도시림 감소로
   나무와 식물 밀도 높여야

가로수, 아파트 수목 보존문제는 단순히 도시경관측면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는 날이 늘고,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기후변화 대응은 물론 미세먼지 저감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인당 생활권 도시림 면적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인 9제곱미터를 달성했으나, 서울은 4.38제곱미터에 머물러 있다. 런던 27제곱미터, 뉴욕 23제곱미터, 상하이 18제곱미터, 파리가 13제곱미터로 선진국 주요 도시와 큰 차이가 있다.
산림청의 2015년 말 조사결과와 2017년도를 비교하면 생활권 도시림 감소 현상은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도시화로 인구가 밀집한 데다 녹지가 부족해 나무와 식물의 밀도를 높이고, 가로수뿐 아니라 재건축 단지 내 고목, 민간부지 수목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과천에 거주하는 B건축사는 “과천은 과거 개발 시 마스터플랜을 할 때 오래된 나무가 있으면 나무숲을 보존한 채로 단지설계를 했다. 오히려 지금은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는 있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개발이 되는 것 같다. 말로만 친환경, 생태건축을 외칠 게 아니라 도시자산으로서 수목 보존을 위한 보존책 및 법제화가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