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철쭉과 억새군락으로 유명한 화왕산성

▲ 화왕산성 정상쪽에서 바라본 내부 모습

철쭉이 피는 계절, 억새가 피는 계절에 자주 떠오르는 곳 중 하나가 창녕이다. 경상남도 접경지역으로 작은 군이지만 창녕 화왕산성내와 계절을 알리는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다. 그곳에는 화왕산성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성곽이 자리하고 있다. 날씨가 따스해진 틈을 타서 창녕의 화왕산성을 찾아가 보았다.

창녕 화왕산성은 화왕산(해발 756m)을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테뫼식 산성이란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을 의미한다. 화왕산성은 둘레가 2.7km에 이르는 산 위에 축조한 산성으로 창녕지방에서 큰 산성에 속한다. 현재 성벽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물을 저장하는 집수지가 남아 있다. 이 집수지는 성 내 군사들의 식수와 방화수로 사용하기 위해 물을 모아두는 시설물이다. 산성이 안쪽으로 움푹 파여 있다 보니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가운데로 물이 고인다. 성 내 가장 낮은 곳에 돌계단형태로 집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 화왕산성(火旺山城)의 특징
화왕산성은 비화가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창녕의 군사적 중심지로 활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근거지로 삼아 큰 전공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화왕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창녕의 진산으로 소개되어 있다. 창녕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서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전망이 좋아 군사적 요충지로 안성맞춤이다. 아울러 집수지에서 제사와 관련된 철제무기와 용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재인형, 동물뼈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창녕지역의 제의를 담당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화왕산성은 예로부터 창녕을 수호하는 곳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실체가 남아있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사적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다.
○ 화왕산성 내 시설물
화왕산성은 산 정상부에 있어 차량 접근이 어렵다. 창녕여자고등학교 인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아스팔트길을 걸어올라 등산로에 다다른다. 코스 중 가장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도성암 코스이다. 3개의 등산로가 있으며, 1코스는 바위와 밧줄 구간이 많다. 약 3.2km의 거리로, 약 1시간 40여분이 소요된다. 2코스는 가장 쉬운 구간으로 정상부 주변 돌계단으로 오르는 구간만 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약 2.6km로, 1시간 10여분이 소요된다. 2코스는 도성암을 거쳐 오르는 능선 코스로 약 1시간20여분이 소요된다. 오르는 중간에 전망대가 있어 경치를 구경하기에 좋고 올라가기도 쉽다.
 
정상에 도착하면 억새가 햇빛에 은빛을 발하는 모습을 띤 화왕산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억새 군락지가 화왕산성 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잘 정돈된 억새밭 숲길과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면 화왕산성의 멋스로움을 관람할 수 있다. 2019년에 17억을 들여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해 관련 시설물 보수와 관찰로 정비를 하다 보니 더 방문하기가 쉬워졌다. 철쭉 피는 올 봄에는 편하게 관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곽을 돌다보면 중앙부에 커다란 바위 비석이 있다. 창녕 조씨의 성씨 발원지라는 비석과 함께 돌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꽃을 바친 것으로 보아 조상들의 자주 찾는 뿌듯한 장소인 듯싶다.
창녕 조씨 득성 설화지의 글귀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창녕 조씨의 시조인 조계룡의 탄생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전설이 깃들어 있는 연못인 용지 3곳과 득성비 1기가 있다. 득성비란 성을 얻게 된 사연을 기록한 비석이다.

신라 진평왕 때 한림학자 이광옥에게 예향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16세에 청룡병에 걸려 배가 부어올라 고생을 했다. 온갖 정성을 쏟아도 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비범한 사람이 화왕산의 용담에 가서 기도를 하고 목욕을 하면 낫는다고 말했다. 이광옥은 딸을 데리고 가 기도를 했다. 그러자 하늘이 흐려지며 용담에서 큰 용이 나와 예향을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다시 하늘이 맑아지더니 예향이 물속에서 나왔는데 이후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 꿈속의 말이, 그 아이는 장차 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 하였다. 이후 아들은 커서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는데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가 있었다. 왕이 소문을 듣고 불러다가 아들에게 성을 조라고 하사하고 용의 후손이라는 뜻의 ‘계룡’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것이 창녕 조씨의 시조가 되었다.

득성비는 고종 34년(1897)에 조선 말기의 문신인 조시영이 경상남도 관찰사로 왔을 때 세운 것으로 “창녕 조씨의 성이 비롯된 곳”이라는 글씨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곽과 산책로가 잘 정돈돼있을 뿐만 아니라 억새 군락지 보호를 위한 공사와 집수지 주변이 정리되고 있어 잠시 바람을 쐬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에 좋은 장소라 여겨진다.

요즘은 역사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적어진 것 같다. 눈에 쉽게 담을 수 있는 장소와 보여주기 쉬운 인증샷 위주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성곽의 의미, 의병의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이번 여행에서 해보았다. 그럼에도 물 한 병 안 들고 정상에 올라오는 젊은 학생들을 보면 대견하기도 했다. 화왕산성 여행을 통해 삶과 생활과 역사적 공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장소가 아닌가 싶다.
 
출처=화왕산 안내문 및 화왕산성 안내판 일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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