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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설계하듯이 이웃 사랑을 재료 삼아서

기사승인 2020.01.02  15: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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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교 건축사(성은 건축사사무소)·목사_외국인 사랑 나눔 지원 센터 운영위원

열악한 근로환경과 인권 침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충청북도의 비영리단체 '외국인 사랑 나눔 지원 센터'. 2003년부터 외국인 근로자 100만 시대를 앞둔 현재까지 급식, 한글공부, 병원치료, 쉼터제공에서부터 취업, 치료 등 폭넓은 사업을 운영하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권, 인권, 생존을 돕고 있다.

17년 간 센터를 이끌어 온 김수희 목사는 자국과 타국을 가리지 않고 본 센터를 비롯해 교회와 양로원을 짓는 등 봉사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살아왔다. 김 목사 곁에는 언제나 남편 오정교 목사(건축사, 성은 건축 사사무소)가 함께 했다. 그는 한양대 건축학과(63학번)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40년 간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한 건축사 출신으로 여전히 현역이다. 반 평생 건축사로서 서울 곳곳을 다듬어 온 그가 이웃의 고통을 어루만지려고 60대에 청주로 와서 목사가 된 사연은 가만 들여다보면 그 두 개의 삶이 별개로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는 아끼고 인터뷰 내내 외국인 근로자가 처한 현실을 대변하던 오정교 건축사. 집을 설계하듯이 이웃의 사랑을 재료 삼아서 묵묵히 외국인 근로자들의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건축사가 60대에 신학대학에 들어간 사연

건축사로 활동 중인 사람이 60대에 신학대학에 들어간다고 하면 보통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오정교 건축사의 선택 앞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럴 줄 알았다 는 반응이었다. 그동안 오정교 건축사가 걸어온 삶은 신앙과 무관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권사셨고 동생은 목사입니다. 심지어 아내(김수희 목사)는 해외 열네 군데에 교회를 지은 목사죠. 해외봉사를 할 때마다 저도 따라 가서 함께 교회를 짓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그랬습니다."

오정교 건축사가 외국인 근로자를 돌아보게 된 것은 김수희 목사와 평생을 동행했던 해외 봉사활동이 계기가 되었다. 부부는 해외에 머물 때마다 의사소통이 안 되고 음식문화가 맞지 않아서 고충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차' 싶었단다. 우리나라로 온 외국인 근로자들도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과 노동권에 대해 논의되고 있지만, 이십여 년 전만해도 그들의 삶은 폭력이나 질 낮은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당연시됐었다. 그들의 열악한 현실에 눈을 뜬 부부는 2003년에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인 청주로 내려와서 본격적으로 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그해 부부 모두 이순을 앞둔 때였다. 하지만 이들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센터의 모태인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지원회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오정교 건축사가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모두 '제대로 돕겠다'는 일념 하나에서 시작됐다. "목사가 아닌 일반인 신분으로 봉사를 하다 보니 활동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본래 공부를 좋아하기도 해서 신학대학에서 목회 공부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부족하지만 저희의 노력 덕분에 점차 밝아지는 이들의 삶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동안 센터를 거쳐 간 외국인 근로자만도 수백 명이다. 사실 이들 각각의 사연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먼저 밀려온다. 고용불안, 가족폭력, 미숙한 의사소통 등 다양한 문제로 인해 당장의 의식주마저 위협을 받고 센터를 찾아오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일 것이다. 연탄공장에서 일하다 왼손 손목을 절단하게 돼 직장과 집을 한순간에 잃은 중국인, 알 수 없는 이유로 실명하게 된 우크라이나인, 십 년 전에 울면서 센터를 찾아온 몽골인 산모……. 부부에게는 모두 아픈 손가락이다.

"당신들 덕분에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외국인 사랑 나눔 지원 센터' 에서는 한글교사, 통역사, 쉼터관리자, 조리사 등 15명의 직원들이 다양한 봉사자들과 힘을 합쳐서 외국인 근로자의 생활 전반을 돕고 있다. 매주 일 요일마다 소박한 급식소에서는 40인 분의 끼니가 만들어지고, 한 달 평균 세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직장과 집을 구할 때까지 오 평 남짓한 쉼터에 머문다. 청주시자원봉사센터에서 온 대학생 봉사자들은 이들에게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쳐준다. 이외에도 센터에서는 고용노동지원센터, 출입국관리소, 병원 등 다양한 단체들과 협업해 센터를 찾은 이들에게 취업상담, 질병치료, 고용계약교육, 비자연장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외국인 혐오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작금의 현실을 볼 때 단순한 봉사 활동의 수준을 넘어선다.

이와 대조적으로 센터의 형편은 부부가 힘을 모아 지원회를 오픈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부부는 오정교 건축사가 운영하고 있는 사무소에서 번 돈으로 근근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정을 안 여러 단체들에서 쌀과 반찬값 등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임대료 등을 감당하기엔 부족한 형편이다. 센터가 세 들어 사는 오래된 건물은 난방조차 되지 않는다. 공장에 사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센터로 데려오고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는 12 인승 차에서는 뻑뻑한 소리가 난다. 십 년 전 '사랑의열매'에서 기부해준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센터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서 부부의 태도는 초연했다. "우리는 이제 칠십이 넘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고, 다만 지금까지 해왔듯이 이 정도의 규모로 꾸준히 센터를 운영하면서 힘닿는 데까지 봉사하고 싶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이들로부터 "당신들 덕분에 한국을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감동한다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부부의 얼굴은 슬픔인지 기쁨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건물도 있고 좋은 차도 몰았던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서울에서의 생활보다 지금이 더 행복할까? "과거와 비할 수 없을 만큼 하루하루가 충만하고 기쁩니다." 오정교 건축사의 대답이다.

"하나둘씩 자연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늘어갑니다. 그분들을 보면 모두가 빈손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모습은 달랐습니다. 사는 동안 베풂에 인색하지 않았던 분들의 얼굴은 환하고 밝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깨닫곤 합니다. 아,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구나. 모두가 바쁜 생업에 급급하겠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봉사할 기회가 생기면 우물쭈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모두 덕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이유리 기자 leeyr8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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