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 · 유홍준 · 히로시 삼부이치 · 데이비드 치퍼필드 등 4인

<기조강연 - 승효상>

승효상 국건위원장 “건축계의 새로운 환경 조성 위해 건축사들의 협력과 도움 필요하다”

기조강연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
건축사, 공공의 역할 강조

건축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삶에 관해 깊은 관심이 있어야 하며 스스로를 객관화시켜야 한다” _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지난 11월 27일, 2019 대한민국건축사대회 개회식 직후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의 기조강연이 이어졌다. 승효상 위원장은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승효상 위원장은 문학평론가 w. 사이드의 저서 <권력과 지성인>을 인용, 지식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경계 밖으로 내몰아 스스로를 객관화하며, 그 지식인 덕에 경계 안의 세계가 늘 진보해왔다는 내용에 빗대 건축사를 ‘경계 밖에 있는 자’로 규정하며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에 관한 강의를 펼쳤다. 결계 밖 인물로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 노무현 전 대통령, 르 꼬르뷔지에 등의 삶을 예시로 들었다.

또한 당나라의 문인 유종원에 의해 쓰여진 <재인전> 속 ‘재인(도목수 장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1200년 전 건축사(오늘날로 치면)의 역할 역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야기 속 재인은 ‘일을 맡으면 현장의 모든 기능과 제어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일이 끝나면 뒤로 숨는 사람’이다. 또 ‘개인의 일을 하면 100의 돈을 받지만, 공공의 일을 하면 그 절반인 50을 받는 즉, 공공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하였다. 승효상 위원장은 “이것이 건축사가 사는 방법이다. 무려 1200년 전에도 건축사는 이렇게 살았다”며 건축사의 공공의 역할을 다시 강조하고, 이를 위해 다른 이의 삶에 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승효상 위원장은 “건축사가 그리는 평면도는 실제 신의 위치에서밖에 볼 수 없다. 자신을 자신 속에 가두지 않고 객관화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승효상 위원장은 “내년 4월에 국건위 위원장 임기가 끝난다. 국건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사회에 그동안 있어 온 고질적이고 만행된 불합리한 관행과 습관에 대응하는 일이며, 이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매우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 서너 가지 법이 입법화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건축법 개정이나 공공건축특별법 등이 통과되고 그에 맞는 시행령까지 만들어진다면 건축계에 전례 없던 혁명적 환경이 조성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이 일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육혜민 기자



<특별강연 - 유홍준>

유홍준, 백제 건축의 미(美)를 화두로 던지다

“역사 속 문화재는 곧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 반영”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백제 건축의 미를 한마디로 표현했다. 이는 백제본기 온조왕 15년에 궁궐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고 김부식에 의해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백제는 장인이 존중받던 시대였다고 말했고, 건축사 역시 장인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11월 28일 대한민국건축사대회가 열린 코엑스 B홀에서 특별강연에 나섰다. 그는 시종일관 역사와 그에 수반한 문화재를 언급했고, 오늘날 문화재가 갖는 의미를 재해석했다.

시각과 관점의 차이가 편협성 없애는 수단

유 전 문화재청장은 민족이 갖는 국토 크기에 대한 콤플렉스를 우려했다. 그는 한 문헌에 기록된 한국을 소개했다. “한국은 중국 때문에 작아 보이지만 남북한을 합하면 실제적으로는 유럽의 보통나라와 비슷한 크기이고, 또 한편으로 미국의 미네소타주 정도라고 왜소함이 강조되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를 합친 면적과 비슷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코리아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얘기할 때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만 가지고 얘기해 편협성과 열등감을 가지게 됐는데,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사로서의 역사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세계, 동아시아에서 살아왔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민족의 강점, 자랑거리가 드러날 것이다”고 시각과 관점의 차이를 강조했다.

연천 전곡리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세계 고고학 지도를 바꿔놓은 기념비적인 유물이라는 말로 민족의 정체성을 밝히기도 했다. 주먹도끼의 발견은 당대 학설을 뒤집은 일로 세계 고고학 지도에 서울은 나오지 않지만 전곡리는 나온다고 소개했다.
그는 암사동 유적지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를 통해 3,000년 동안 한반도에 살았던 이들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알타이에서 유래된 한국인의 뿌리가 되는 증거라는 말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밝혔다.

건축 등 복원 논의가 진행된 바 있는 일화도 소개했다. “사라진 문화재 복원은 후손의 임무이지만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면서 몽골에 의해 소실된 2만5,000평 규모의 황룡사 복원 건을 언급했다. 그는 “황룡사 복원에 2004년 기준 3,500억원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소개하며 “문제는 문화재 복원 시 만년이나 십만 년 동안 보존하고 후손에 물려줄 문화재로 짓겠다는 생각보다 조달청에서 턴키로 진행될 예산 3,500억에만 혈안이 될 것이다”며 비판했다. 문화재가 갖는 가치에 주목하지 못한 건설업계를 우려했음을 밝힌 것이다. 또 콘크리트를 사용해 엉터리로 짓기보다 빈터로 남겨 후손들이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백제시대, 건축사는 장인

장인을 존중하던 백제 시대에 이르러는 건축과 공예가 꽃을 피웠음을 말했다. 선덕여왕에 스카우트 돼 황룡사 9층석탑을 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건축사 아비를 소개했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백제의 건축 미학을 전했다. 이런 미학은 조선시대 정도전에게도 전해져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는 경복궁이 지어진 원동력이 되었다.
유 전 문화재청장은 강연 말미 “상암월드컵 경기장을 누가 설계했냐고 하면 아는 사람이 없고 시공사만 기억한다”고 지적하며 “이는 저자는 없어지고 출판사만 남는 경우이고 건축사가 이에 해당한다”고 밝히며 건축사의 명예가 백제시대 장인처럼 존중받길 희망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관희 기자

 

<특별강연 - 히로시 삼부이치>

히로시 삼부이치, “움직이는 자연 소재 활용이 건축의 이상형

“건축은 그 장소의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고 후세에 남기는 것이 중요”

“같은 장소라도 산의 남쪽과 북쪽은 식물의 형태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움직이는 소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건축이라는 것은 그 지역의 움직이는 소재에 따라서 형태가 결정되는 고유의 식물과 같은,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연요소를 건축물 설계에 반영하는 건축사 히로시 삼부이치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움직이는 소재를 주목했고, 그런 소재를 활용하는 것이 건축의 이상형이라고 단언했다.

물, 공기, 태양 등 움직이는 소재 주목

건축사이자 야마구치 대학과 덴마크 왕립 예술아카데미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히로시 삼부이치는 11월 27일 코엑스에서 개최된 대한민국건축사대회 특별강연에 나서 물과 공기, 태양과 같은 움직이는 소재의 중요성과 이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히로시 삼부이치는 강연 내내 자연을 강조했다. 그는 “건축은 그 장소의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고, 움직이는 자연 소재에서 만들어지는 그 지역의 장점과 매력을 전달하고, 그것을 후세에게 남기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부이치는 세토내해에 있는 가장 높은 산에 피는 상고대를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세웠다고 밝혔다. 얼음도 눈도 아닌 상고대는 서리꽃이라 불린다. 지속되는 리서치를 통해 상고대가 피는 상황을 실험했고, 습도 100%, 온도 영하 5도에서 10도, 풍속은 5~10 미터라는 자연조건이 갖춰줘야 상고대가 생긴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는 상고대의 중요성은 바로 식물의 수분 섭취 수단이 된다는 점이라고 소개했다. 삼부이치는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매커니즘을 표현해내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망대를 세웠다고 부연했다.
삼부이치는 “전망대에는 겨울에는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건물안에 상고대가 피어나고, 여름에는 수증기가 되어 해발 1,000미터 까지 올라온다”면서 “굴뚝 모양을 한 건물은 공기를 끌어올려 여름에 차가운 바람을 만들고, 겨울이 되면 다시 상고대를 만들지만 태양이 뜨면 녹아내려 식물에게 수분을 제공하게 된다”고 밝혔다. 물, 바람, 태양이 순환하는 건물이라는 사실을 환기했다.

이누지마 재생 프로젝트,
바람 이용해 공조시스템이 필요 없는 건축물

삼부이치는 파괴된 섬 이누지마 섬의 재생프로젝트로 화제를 돌렸다. 삼부이치에 의해 폐허가 된 구리 제련소가 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프로젝트이다. 그는 구리 제련소에서 발생 된 슬래그 벽돌과 유리, 굴뚝을 활용해 통해 공기를 끌어올려 공조시스템이 필요 없는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는 이누지마 제련소 미술관으로 일본 건축대상과 일본 건축학회상 작품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런 사고 방식은 나오시마 플랜으로 이어졌다. 기업가 후쿠다케 소이치로와 함께 자연과 순환하는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바로 바람을 전달하는 나오시마 홀이 그것이다. 삼부이치는 400년 전의 메시지를 400년 후에 전해지게 하고 싶어 건물의 지붕을 오래된 팔작지붕 형태로 구성했다. 팔작 지붕안에 있는 구멍을 통해 바람이 통하고, 여기서 생기는 압력을 활용해 공기를 움직이는 형태이다. 자연의 힘만으로 공기를 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삼부이치는 “지향하고 있는 바는 사람 그리고 지구도 인정해주는 건축이다”면서 “건축사에게 클라이언트는 사람이고 또 하나 중요한 클라이언트는 지구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구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매력적인 것, 이것을 만드는 것이 건축사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박관희 기자

 

<특별강연 - 데이비드 치퍼필드>

‘민간 건축물의 공공성도 중요’
도시와 주민 위한 건축사의 책임 강조

데이비드 치퍼필드, ‘과거와 미래를 잇는 건축’ 주제로 특별강연

2019 대한민국건축사대회의 열기가 한창 무르익은 11월 28일 오전 11시, 전세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영국 건축사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건축’을 주제로 마지막 특별강연 연사로 강연에 나섰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2012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총감독 ▲베를린 신 박물관 복원사업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설계 등 자신이 참여한 세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사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설명하며 이를 위해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더불어 공공을 향한 건축사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관한 강의를 펼쳤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무분별하고 빼곡하게 들어선 건축물로 인한 도시경관을 언급하며 “어떻게 아이디어를 조합해 도시와 환경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운을 뗐다. 그는 이 문제의 큰 원인 중 하나로 ‘투자’를 꼽았다. 도시의 경관을 일부러 망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한이 정부 또는 투자자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건축사에겐 권한이 없다. 우리(건축사)는 의사결정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끌려다닐 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에 관한 관심에서 조금 더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계획체제에 개입하고 공동체나 지역사회와의 반목을 줄이기 위해서는 투자가 사회적 아이디어와 결합해야 한다”면서 “계획이 잘 되지 않으면 마을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지기에 사회와의 논의를 거친 내용을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그 자신은 ‘마을과 도시공간 환경의 질’에 관심을 두고 ‘역사를 건축에 어떻게 집어넣는가’, ‘건물의 공공성을 어떻게 강화하는가’ 등에 관한 고민의 흔적을 담은 프로젝트 결과물 사례를 보여줬다.

한편으로는 “전세계 인구의 절반은 현재 도시에 살고 있으며, 또 그 중 절반이 임시 주택에 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건축사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에는 도시와 주민들을 위한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내는 건축주뿐 아니라, 민간의 건물이 공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며 ‘지역사회의 특성과 공동의 공간이라는 특성을 반영한 건물’의 역할과 중요성을 피력했다. 그는 콜로네이드 구조로 도시와 건물, 지역주민을 잇는 역할을 하는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사례를 마지막으로 “근무환경이 개선되면 건축의 질이 개선되고, 그를 통해 회사와 도시와 건물과 도시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더 좋은 일이다. 그리고 서로 책임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며 강연을 마쳤다.

육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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