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옛것이 뜨고 있다. 단순한 복고(re-tro)가 아니다. 새로운 복고 ‘뉴트로(New-tro)’다. 레트로가 장년층의 향수에 기댄다면, 뉴트로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옛 것의 신선함으로 승부한다는 의미다. 뉴트로는 과거라는 이름의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설렘이다. 과거의 무조건적인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미학적 감성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뉴트로는 단지 과거를 파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빌려 현재를 파는 것이다. <트렌드 코리아 2019> 책의 일부 내용이다. 이곳 펭귄마을은 장년층에는 옛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색다름을 느끼게 하는 장소 중 하나다.
마을이야기
양림동은 500년의 마을 역사가 쌓인 두터운 지문(地文,Landscript)을 가지고 있다. 120년 시간의 켜를 간직한 전통가옥인 이장우 가옥(옛 정병호 가옥)과 100년에 가까운 최승효 가옥(옛 최상현 가옥)도 있다. 110년 이상을 함께한 선교사 관련 근대건축물들도 다수 함께하고 있다.
사업 부지는 100년 전 광주천을 직강화하면서 형성된 천변부지로, 이곳에 들어선 자연부락의 일부다. 필요에 의해 필지가 나눠지고, 통행을 위해 골목이 생기고, 있는 지형 그대로 이용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펭귄 없는 펭귄마을
옛 주거지의 공동화 현상은 양림동,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1년 광주 남구청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을 계획했고,  ‘양림 2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 정비구역지정’을 하면서 현 위치 3,835제곱미터를 어린이공원으로 지정했다.
공동화와 이런 저런 이유로 빈집들이 생겼고, 어느 날 골목 안 폐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후 방치된 이곳은 흉한 쓰레기장이 되어버렸다. 이 동네주민 한 분(현 펭귄마을 김동균 촌장)이 앞장서서 마을주민들과 함께 이곳을 치우고, 정리하면서 주변의 잡동사니를 예쁘게(?) 꾸몄고, 빈 공간은 텃밭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2013년 5월부터다. 텃밭에서 재배한 갖가지 농작물은 마을주민들과 함께 나누었고, 이곳에 이름을 붙였는데...,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어느 마을주민의 걷는 뒷모습이 흡사 펭귄같이 귀엽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 ‘펭귄텃밭’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용되지 않는 생활용품과 버려진 물건들이 많아졌고, 이를 정크아트 작품(?)으로 만들어 골목의 벽면과 가장자리에 배치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자연스레 ‘펭귄마을’이라 칭하게 됐다.
사업내용
공식사업명칭은 ‘양림공예특화거리조성사업’이다. 펭귄마을 입구와 골목을 포함해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하면서 ‘어린이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 ‘문화공원’으로 바뀐 곳이다. (문화공원 내는 건폐율이 20%이며, 전시, 체험, 소매 등 여러 업종이 가능하다.)
주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긴 텃밭과 정원, 골목의 정크아트는 물론 살아있는 마을 공동체를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전통가옥, 선교사 관련 근대건축물과 연계할 목적으로 펭귄마을이 포함된 문화공원 부지에 공예특화거리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테마골목, 공예, 체험, 전시, 공연 등 다양한 즐길 거리의 장(場)을 만들어 주변 문화관광자산과 함께 독특한 관광코스개발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총괄건축가로 참여하기
필자는 2016년 11월부터 본 사업의 총괄건축가로 참여를 하고 있다. 발주자도 필자도 복(福)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업비 확보를 위해 작성한 제안서를 토대로 기본개념, 설계자 선정 방법, 설계방향 정립, 주민설명회, 시공과정 관리 등등 전반의 진행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는 사람이 ‘나’라는 게 부담도 되지만 설계개념을 예산과 각종 규정의 범위 내에서 계속 수정보완하면서 마무리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금년 12월에 마무리 예정)
재생사업이든, 단일건축물의 건축이든 대부분 기획, 설계, 감리, 사용검사 등등이 따로따로다. 이렇게 해서는 좋은 결과물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참여하고 있는 본 사업이 성공적이라고 아직 말하긴 어렵다. 건축주(행정)의 담당실무자가 바뀌는 상황에서, 총괄하는 전문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완성도나 여기에 임하는 관계자들의 자세는 다르게 된다고 본다. 이런 제도가 없다면 사업은 아마 소극적으로, 주어진 기간 내에 끝내는 게 목표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이를 극복할 하나의 대안이 기획 단계부터 건축사들이 참여하여 사업전반을 컨트롤 할 작은 의미의 ‘총괄건축가’제도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 일을 지금 하고 있다.
건축사의 역할
총괄건축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건축사이다. 실무경험이 있는 건축사면 더 좋겠다. 건축사는 이런 역량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단, 관심이 부족하고 행정의 생각이 아직 못 미치거나 환경조성이 덜 되었을 뿐이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아질 것이기에 건축사들은 하나의 필지에만 매몰되어 고민하는 누를 범하지 말고, 주변으로, 마을로, 도시로, 사람 사는 세상으로, 사업에서 사명으로... 사유와 활동의 영역을 확대하면 좋겠다. 필자도 이런 노력을 하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그래도 해야 된다. 외국의 유수한 건축문화 공간과 장소를 보면서 부러워 할 것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와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더 치열하고, 더 간절한 마음으로 건축사의 역할과 업역을 고민하며 몸소 실천해야 할 때라고 본다. 나를 포함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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