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다’와 ‘만들다’에서 느낌의 다름은 무엇일까. 인간은 집을 짓고 집은 인간을 품는다. 짓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얕잡아 보거나 함부로 하면 낭패를 보게 된다. 설계는 건축의 근본이요 전부다. 설계가 튼실해야 공사가 확실하고 삶이 편안해진다. 대개 건축은 아무나 할 수 있고 가능하다 여긴다. 마음이 없는 행위만으로 짓는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여겨짐에 익숙하다. 그러면서 멋지고 아름다운 집을 꿈꾸고 좋은 집을 기대하고 만들겠단다. 마음 없이 가능할까.
집이나 밥, 옷을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한 것에 독특함이 있다. 마음을 담고 담았음이 읽힌다. 만드는 집과 짓는 집은 다르다. 멋과 맛을 담아내고자 다섯 가지 감각에 마음의 오감을 더해 멋과 맛을 담아낸다. 바로 짓는 것이자 건축이다. 건축사의 총지휘(아우르기) 없는 건축은 무의미하고 불가능이다. 바로 건축사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핵심적인 행위다. 총지휘에서 정의와 공정은 절대적이다. 그만큼 건축은 공공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르기(총지휘)에 정의와 공정으로 지었다. 이렇게 이어지고 쌓여 자산이 되었다. 그 자산은 고객의 신뢰를 낳고 인정으로 성장했다. 무형의 자산이자 가늠할 수 없는 가치다. 쌓여진 자산을 쓰기만 하여 텅 빌 정도다. 자산창고가 허물어질 단계다. 가치도 허물고 망쳤다. 이런 지경임에도 관심이 없다. 자산이나 가치에도 무관심하다. 자산창고를 채우고 가치를 높이는 것에는 더더욱 무관심하다. 무엇이 자산이나 가치를 거덜 나게 하는가. 견제와 균형체계와 인식의 흐트러짐이다. 주택법령에서 건축주이자 시공자로 가능하게 됨은 건축주와 시공자, 설계자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삼각체계가 허물어지는 시초가 됐다. 이는 건축사의 정체성을 흔들고 건축을 구현하는 건축사의 총지휘라는 커다란 자산을 날리게 만들었다. 감리가 설계업역에서 감독업역으로의 전이도 주요 사유다. 설계정보 전달 수단을 잃음으로 건축의 변형을 낳았다. 멋과 맛을 짓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낳았다. 이 또한 자산과 가치에 손실을 크게 안겼다. 건축설비분야의 이탈도 커다란 사유다. 무형 자산의 손실로 이어졌고 자산창고의 벽을 허물게 만들었다. 소방설비가 이탈하자 전기설비에 이어 통신설비가 뒤따랐다. 건축설비라는 단어가 사라질 처지다. 건축물의 생성에서 멸실은 건축사의 통할(統轄) 대상이다. 통할(統轄) 대상에 있다고 그 전문성이 무시되거나 존중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구조분야와 기계설비도 이탈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자산을 허물고 손실을 입힐 게 자명하다. 크게 가치를 무너뜨릴 기세다. 또 다른 사유는 건축사의 분열이다. 설립취지와 목적을 다소 달리 하는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새건축사협의회라는 3개의 단체가 있다. 다양성이 추구되는 측면은 긍정적이지만 분열은 집중력을 약화시킨다. 건축사의 활동 공간이라는 점과 모두 ‘건축사’와 ‘건축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공통점이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여질까.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국가나 사회에 지대한 업적이나 공로가 인정되는 전문가가 ‘가’로 호칭되는 정의에 비추어 공공건축가 또는 젊은 건축가로 호칭하는 것은 부풀림이요 포장으로 보여진다. 이것 또한 자산창고 채우기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지역의 특성과 권익을 우선하여 건축사의 본질이 무시되는 지역건축사회의 의견도 있다. 여성건축사회 설립도 추진되고 있다. 3개의 협회의 취지, 목적과 다른 그 무엇이 있고 건축사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다면 이의 없다. 회원 줄 세우기와 상당한 비용조달로 치르는 그들만의 건축사대회는 본질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이런 현상은 건축사의 무형자산을 허물게 할 것이다. 충분한 협의와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모든 원인은 건축사 자신에게 있다. 자산창고를 짓고 채우는 것도 건축사의 할 일이요 책임이다. 가치를 높여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건축사의 이미지는 쌓여진 자산에서 생겨나고 건축사의 인식은 자산가치에 근거한다. 고갈되기 전에 그 만큼 채움이 필요한 이유다. 채우고 높이는 방안이 있다. 견제와 균형 체계의 구축이다. 감리는 설계의 연장선에 있는 설계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감독과 분별함이다. 건축사의 정체성인 총지휘 개념의 확립이요, 지키고 키워가는 것이다. 자산채움과 가치높임이야말로 건축사가 쌓아야 할 건축사의 꿈이다. 멋과 맛을 담는 아우르기는 모두의 바람이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