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10분. 오늘도 변함없이 “준비하고 10분 후 나와”라는 선배님의 짧은 통화로 아침을 맞이한다. 아직 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대학 1년 선배님의 차를 얻어 타고 도계(道界)를 넘어 인턴인지 직원인지도 불명한 건축사사무소로의 출근을 반복하게 되었다.
동기들 보다 조금 빠르게 취직 아니 좀 더 먼저 건축설계실무를 접하면서 학생 때 배우던 혹은 공부했던 건축적 지식들이 즉시 전력이 아니란 사실에 한번 놀랐고, IMF 이후의 얼어붙은 건축경기라고 반보 후퇴해도 여러 달이 지나도 수주되지 않는 설계건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치 보는 막내라 늘 불안해하는 나와는 달리 두 건축사님 및 선배님은 여유가 넘쳐보였고 때때로 나에게 확고한 비전과 두터운 신임을 보내주셨다.
해가 지나 학교를 졸업하고 정직원이 되고 사무실의 프로젝트도 점차 늘어나 하루하루 바쁘게 사무실 생활을 하며 막내생활 3년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후배도 들어오고 프로젝트 서포트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그렇게 건축적 자양분을 쌓아왔다. 돌이켜보건대 첫 직장이었던 지역의 자그마한 건축사사무소에서 11년 동안 정말로 열정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 싶다.
퇴사 후 어떤 일이 주어져도 잘해낼 수 있을 거란 열정과 자신감으로 협력업체 사무실 한 칸을 빌려 건축사시험을 병행하며 용역사무실을 운영하게 됐다. 하지만 새끼 새 마냥 어미가 물어다주는 미끼만 먹고 자란 나에게 선뜻 일을 맡길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그달 벌어 그달을 사는 생활이 계속됐다. 좌절과 인생의 쓴맛을 봤지만 다행히 믿고 의지하는 아내와 아들, 아낌없는 조언과 소주 한잔으로 달래주는 친구들, 본인들도 힘들 텐데 후배 걱정하며 아르바이트건 만들어주시던 선배 건축사님들 덕분에 자신감을 회복하고 오랜 수험생활을 마치고 서른아홉이란 늦은 나이에 건축사시험에 합격하게 됐다.
가족과 친구들의 격려를 등에 업고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여 다시 한번 비상의 날개짓을 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준비와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눈앞의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신생업체의 프로젝트 수주는 하늘의 별따기였고, 우스갯소리로만 들어오던 직원을 모셔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혼자서 밤을 새고, 주말에도 여전히 혼자서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이게 현실이구나, 열정만으로는 되지 않는구나’ 자책도 여러 번 하였고 가족에 미안한 마음만 깊어갔다.
그렇게 한해 두해가 지나가고 여전히 텅 빈 사무실에 혼자인 나를 보며 다짐하게 된다.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혀 수긍하며 살지 말아야겠다. 건축을 열정으로 배웠기에 나도 누군가에게 열정을 심어줄 그런 건축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오늘 하루 성장하는 인생을 쌓고자 마음을 다잡는다.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건축... 열정과 현실에서 다시 열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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