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지성은 매 순간 재미있고, 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라고 말했다. 위대한 선수가 위대할 수 있는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할 줄 알기 때문이다. 나이 오십을 넘어 이제 겨우 건축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유명 건축사는 건축은 육십부터라고 말했다지만 그 위대한의 경지에 닿을 수는 없겠으니 남들은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 건축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건축을 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식이 축적되었나? 경험치는 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작은 아틀리에를 운영함에 있어 사회적 여건이 좋아졌나? 시작할 때에 비하여 건축사에 대한 시민의식이 업그레이드 되었나? 어느 질문에도 만족할 만한 답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콧노래가 나오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을 맞이했다.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움직였었다. 무허가 건축물이 적발되었노라 양성화 과정에 대한 전화를 받을 때의 짜증스러움, 그려준 도면과 전혀 다른 집을 만나게 되는 신고현장에서의 당혹스러움, 가도면 운운하는 무례한 건축주들을 잘 달래어 돌려보낼 때의 막막함, 돌아서면 다시 돌아오는 월급날. 그 모든 상황이 오픈할 때에 견주어 나아졌다고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거듭하다보니 맷집이 좀 좋아진 것. 매년 작년보다 못하다 자괴어린 말들을 주고받는 오늘, 아이러니 하게도 건축이 재미있어진다.
롱샹교회에 앉아 두 손을 모으며 나의 미래를 꿈꾸었다. 안도 다다오의 발길을 따라 일본을 누비고 여행이 목적인지 답사가 핑계인지 성 가족성당에 퍼질러 앉아 안토니오 가우디의 고뇌에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수없이 사들이는 그림책 값을 아까워해본 기억은 없다. 찾아다니고, 기웃거리며 하루하루를 수도하는 마음으로 지내온 것 같다. 때로 절망한다. 그간의 나의 노력이 어떤 효용도 갖지 못할 것 같은 불면의 밤도 견뎌야 한다. “싸게 잘” 해달라는 건축주들의 요구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라고 설득하는 시간들도 여전하며, 디테일을 고민해야 할 시간에 회계장부를 붙들고 있어야하는 구멍가게 건축사로서의 삶은 때로 한숨을 쉬게 한다. 좋은 건축주를 만나는 행운을 고대하며 보낸 숱한 날들이 나에게 준 깨달음은 좋은 건축주는 불현 듯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불만을 토로할 시간에 한 장을 더 그려 감동을 시킬 때 비로소 좋은 건축주가 만들어질 확률을 높인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 할 말이 아닌 것을 안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보이질 않으니 포기보다는 나를 즐거이 괴롭히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밤새 집들이 꿈속을 어지럽힌다는 것이고, 눈뜨자마자 얼른 출근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아침이 가끔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비 오는 7번 국도를 따라 현장으로 향하는 길,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취하여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순간이 날씨와 장소와 그 어떤 감상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우연이 아니길 바란다. 돌아보면 일에 대한 갈증에 애달파 미친 듯이 현상설계에 매달리고, 부당함에 분노하여 목이 메이던 치열했던 날들이 나의 전성기였나 싶기도 하다. 저마다 전성기는 다르다. 타고난 재능이 일찍 발현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대기만성형이거나 좋은 건축주를 만나는 운이 늦게 닿은 루이스 칸 같은 사례도 있다. 전성기는 물리적 나이가 아니라, 건축이 재미있어지는 순간이 아닌가 한다. 그 ‘위대한’의 반열에 꼭 이름을 올려야 하는 것도 아니라면 이 삶도 나쁘지 않다. 긴 나의 건축인생에서 찰나에 불과한 시간일지라도 나는 오늘 나의 건축을 즐기고 싶다. 아니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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