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조성되어 활기를 띄었던 도시 속 건축물들이 30~40년이 흐르자, 탈이 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고쳐달라고 아우성이다. 단독주택을 예로 들어보면 당시 우후죽순 찍어내던 택지개발지구의 많은 2층 양옥집들, 대부분이 1.0B 조적이 힘을 받는 세벽조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농촌 주택이나 빈민촌에 지어진 단층짜리 슬레이트 지붕의 주택들은 0.5B와 같은 두께인 4인치 블록을 썼는데, 이는 세브조라 부른다. 요즘의 신도시가 아닌 이상 구도심 주변의 주택가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세벽조, 세브조이고, 슬레이트 지붕도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비단 이런 주택뿐 아니라 오래된 건축물을 리모델링하고 활기를 되찾게끔 노력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건축사들에게 주어진 숙명 또는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신도시 건설의 반대급부인지 몰라도 이번 정권에 들어서면서 정책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의 수요가 눈에 띠게 늘었다. 도시재생사업은 기본적으로 낙후도가 높은 지역을 우선적으로 선별하여 국비와 지방비 매칭을 통해 재정 지원을 한다. 석면철거부터 주택개량, 문화공간, 공동체를 위한 공간 등 여러 종류의 재생사업들을 계획하고 시행한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일지 모르나, 설계자의 입장에서는 재정지원을 받는 도시재생을 위한 리모델링 사업이 꽤나 부담스럽다.
기본적으로 미리 행해져야하는 구조안전진단이나 측량, 실측, 석면조사, 불법여부 등이 해결되지 않고 고스란히 설계자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현재 소규모의 리모델링 사업을 계속 수행해오고 있지만, 대부분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해 비용뿐 아니라 계획초반 많은 시간을 조사, 실측 등으로 소모하다가 마감시간에 쫓긴 적이 많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공무원들의 인식이다. 설계비를 산정할 때 기본이나 중간설계 없이 실시설계용역으로 발주한 경우를 종종 보았다. 앞으로 할 노력에 비해 설계비가 턱없이 적게 책정된다. 특히 오래된 건물의 경우 불법증축으로 인해 대장상 면적보다 적게 잡혀있는 경우가 많은데, 발주하기 전 실측을 통해 규모와 불법여부를 가늠하고 발주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라 생각된다. 특히 도시재생 관련 사업의 경우 주민들과의 협의도 잦고, 요구사항도 많은데다 불법적 요소나 이해관계가 많아 인허가나 심의도 난항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듯 변수가 많은 일인 만큼 리모델링의 대가 수준도 개보수로 할 게 아니라 신축에 준하거나 그 이상을 주어야 적정하리라 본다.
제안컨대, 앞으로 관에서 발주하는 리모델링 건은 도시재생 전담부서에서 역량을 쌓은 공무원들이 관리하도록 하고, 협회에서는 리모델링의 세부범주와 등급을 나누어서 각각에 맞는 적정 설계비 산정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보탠다면 기쁜 마음으로 힘들 걸 각오하고, 묵은 껍질을 하나씩 벗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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