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은 일본 식민지배를 반대해서 망명정부, 즉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임시정부는 우리 스스로 독립적, 독자적 국가 운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형식과 절차를 갖춘 체제다. 그냥 사람들이 모여서 독립운동을 해도 되는 것을 이런 조직과 제도, 체제를 만든 이유는 정당성과 인정을 받기위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건축행위도 국가라는 큰 틀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국가의 존재는 건축의 차별성과 독자성을 확립하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다.
그런데 식민지가 남겨놓은 흔적은 뿌리 깊고 영향이 깊다. 겨우 35년을 지배했는데 여전히 많은 분야에 일본 식민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건축계도 마찬가지여서 자생적 사상과 철학의 부재는 끝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그것이 어렵고 관념적인 혼돈의 문제라면 보다 실질적인 문제도 있다. 일본이 만든 용어를 그대로 우리가 사용하는 두 단어가 있다. 법적 제도권 용어인 건축사(建築士)와 그냥 쓰는 건축가(建築家)이다. 둘 다 같은 직업을 지칭하는 단어다. 사람에 따라서 건축가라는 호칭을 일정 수준으로 올라간 건축사로 이야기 하지만, 건축가는 법적 정의가 없는 호칭이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은 건축사(建築師)로 되어 있다.
문제는 이런 혼용이 빚어내는 사회적 혼란과 혼돈이다. 하나는 법적 용어이고, 다른 하나는 비제도 용어다. 그리고 제도권의 건축사는 각종 제재와 법적 책임을 지지만, 건축가는 법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각종 법적 제재와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당연히 법적인 건축행위는 할 수 없다.
같은 직업에 대한 이런 호칭에 대한 혼란은 일반인들에게 치명적이다. 일반인들은 건축사와 건축가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국가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오해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무장 건축사사무소라는 불법 자격 대여소지자들이 명함에 버젓이 건축가라는 타이틀로 영업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무면허 자격자인 이들 사무장들은 명함에 버젓이 건축가로 찍어서 행세한다. 이로 인해 각종 건축 부조리와 문제는 고스란히 오해하는 일반인들이 부담하고 있다. 나중에 문제가 되어서 아차 하면서 소송도 건다. 당장 이에 대한 항의 전화가 대한건축사협회로 오기도 하고, 인터넷 블로그와 SNS에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편집실로도 항의전화가 왔다.
우리 건축사법도 유사 호칭에 대한 금지조항이 있지만, 이에 대한 벌칙이나 제재내용이 미약하다. 의사나 변호사는 보건복지부나 법무부가 나선다. 그런데 국토부는 유독 이에 대한 대응이 약해서 수십 년째 방관하고 있다.
이런 혼란은 전세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영어권 Architect만큼 프랑스나 영국, 미국 등에서는 국가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Architect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불법 사용 시는 각종 법적 제재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Junior Architect라는 표현도 불법으로 다뤄진다. 우리에게 혼란의 계기를 만들어준 일본도 건축사와 건축가 용어 다툼이 오래 지속되었다. 지금도 여전하다.
과연 언제까지 이를 정리하지 않을까? 당장 우리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공공에 대한 공조직 지원이 가능한 각종 행사나 프로그램들이다. 공공건축가라는 호칭으로 봉사개념의 건축 설계 관련 업무를 하면서 공공기관에 봉사하기 시작했다. 관습용어로 문제없던 ‘~건축가’가 제도권 공문서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9년 들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불법 자격대여를 하는 무자격자들의 ‘~건축가’호칭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과 국민이 갖는다. 타당한가? 이제는 ‘건축가’라는 호칭을 건축사법 산하에 어떻게 법적으로 정의를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법적으로 건축사의 별칭으로 제도화 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