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계약서는 ‘건축사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해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
표준계약서가 개정되더라도 실제 사용되려면
법·제도의 마련 또한 시급


사례1] 건축사 A는 건축주 B와 설계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설계변경증액의 면적 기준을 2%로 정하려고 했다. 연면적이 33만제곱미터이고 도시계획절차까지 선행되어야 하고 용도도 복합시설이라 상당한 횟수의 변경이 예측되었고, 2%도 6,600제곱미터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B는 국토부가 고시한 표준계약서 제5조를 보여주며 1)‘갑’의 사유로 계약면적이 5%이상 증감되는 경우에 한해 정산하겠다 2)‘갑’의 사유가 아닌 심의나 허가 등 진행과정에서 변경되는 것은 해당되지 않으며 3)연면적이 그대로인데 계획안이 변경될 경우는 허가를 득한 이후의 변경일 경우에 한하고 연면적의 5%를 넘는 경우에 한해 증액 가능하다고 했다.
사례2] 건축사 C는 발주처 D와 전자계약으로 설계계약을 체결했다. 체결 시에 입찰안내서, 과업내용서, 기재부 계약예규의 일반용역계약조건, 특수계약조건이 첨부됐다. 과업내용서에는 설계변경을 ‘을’의 비용으로 진행할 것과 사용승인 시까지의 사후설계관리업무를 하도록 명시되어 있었고 일반용역계약조건 제16조, 17조로는 계약변경하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계약은 상호간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특히 클레임 발생으로 인해 한 번이라도 소송을 해 보게 되면 ‘계약서’의 토씨 하나의 중요성까지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건축사들이 이를 간과해 내용은 뒷전으로 하고 계약서에 날인하기 일쑤다. 건축사들이 디자인담론에만 몰두하는 오랜 기간 동안 흔히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점점 더 견고해졌다. 건축주와 건축사가 상호간에 맺는 계약은-매너 있는 일부 건축주를 제외하고-불공정계약이고 악성저가계약이다. 불공정한 계약은 이 세상의 수많은 ‘갑’과 ‘을’ 사이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위의 사례는 극히 일부일 뿐 업무범위, 저작권, 지급시기, 손해배상, 지체상금, 계약해지, 계약정지, 계약기간의 연장 등 독소조항들은 계약서 전 범위에 걸쳐 있다. 특히 건축물을 발주하는 독점적이고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계약을 안해도 된다고 압박했고 동료 건축사들은 동일한 조건에 우리는 계약을 하겠다고 시장질서를 스스로 파괴해왔다. 그 결과 공과대 탑을 자랑하던 건축학과는 이제 입결 최하점에 이르고, 업계의 인재들은 ‘탈(脫)건축’이 유행어가 되었으며 국민은 안전과 생명을 위협받고 있고 국토부는 벌점, 각종 심의 신설 등 근원에서 비껴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표준계약서’는 관행으로 굳어진 불공정한 계약문화를 개선하고 건축사의 ‘을’로서의 지위를 ‘전문가’의 지위로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건축물의 설계 표준계약서는 2005년부터 사협회 내 법제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국토해양부와 지속적인 협의를 거쳐 2009년 11월 23일에 개정 고시를 한 것으로 2000년 초반의 건축업계의 필요성과 문제의식의 발로로 만들어진 것이다. 제작논의 시기로부터는 20년이 지났고 고시시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표준계약서는 사례에서 보듯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표준계약서의 역할은 계약지위에서 약자인 ‘을’의 권익을 보호해 공정계약으로 유도하기 위함인데 현재 표준계약서는 그 유통기한이 너무나 지나서 현시대에 맞게 모든 조항을 개정해야만 한다.
2019년 3월 12일자 기사에는 문체부가 미술 분야의 표준계약서 11종을 마련해 문체부 고시로 제정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의미 있게 읽은 부분은 표준계약서가 11종이라는 부분이다. 현재 건축물은 2000년대 초반과는 현격히 다르다. 그 규모의 거대화, 복잡화, 다양화뿐만 아니라 BIM이 도입되고, 각 종 심의, 인증, 영향평가, 각종 계획서의 협의 및 검토가 50개 내외이며, 도시계획업무 결합, 시공 중 설계의도구현업무, 건축물가치평가 등 건축사한테 주어진 건축설계업무가 너무나 광범위하다. 필자도 실무에서 여러 종의 계약서-설계계약서, 기획검토, 자문업무, 사업계획서작성, 사후설계관리, 승계계약서, 영문계약서 등-를 작성하고 있고 새로운 형태의 계약서는 레퍼런스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건축사는 태생적으로 글자보다는 그림에 강하다. 즉 문서에 약하다. 그래서 건축사에겐 다종다양한 표준계약서가 있어야만 한다. 2009년산 표준계약서를 시급히 정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표준계약서가 있더라도 실제 사용되려면 법·제도의 마련 또한 시급하다. 지금이 바닥이다. 건축사가 스스로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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