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전진삼의 와이드 스마일

▲ 전진삼 논설위원(격월간《와이드AR》발행인 겸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대표)

해마다 이맘때면 미국 하얏트재단이 발표하는 올해의 프리츠커상 수상자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1979년 제정한 이래 매년 프리츠커상을 통해서 세계의 스타키텍트-건축계의 살아 있는 레전드-들에게 건축상(노벨상에 준하는 최고의 명예와 미화 $100,000의 상금)을 수여해오고 있는 것이 국내에서도 화제의 중심에 떠오른 지 오래다. ‘인류와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의미 있는 기여를 한 생존 건축사를 기린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는 프리츠커상은 올해 만 88세 일본인 스타키텍트 아라타 이소자키 선생을 수상자로 발표했는데 앞뒤 배경을 살펴보면 평생 공로상의 의미가 크다. 그는 46번째로 수상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에 비할 바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1991년 제정한 이래 30년 가까이 청년 건축세대의 열망을 담은, 상의 이름을 걸지는 않았음에도, 거의 유일하고도 영예로운 수상제도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를 떠올릴 수 있다.

전술한 두 프로그램은 공히 정부 기관, 건축단체 등이 운영하고 있는 제도가 아니라 민간의 인류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금이 준비되고, 수혜자를 찾아서 시상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을 같이 한다. 공공의 배경과 지원을 배제하고 순수 민간의 의지와 탄탄한 재력으로 일군 공신력과 문화적 파급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하다.

▲ 김태수, AIA 명예회원

우리에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설계자로 잘 알려진 재미 건축사 김태수 선생이 1991년에 T. S. Kim Architectural Fellowship Foundation(이하 ‘김태수 건축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한국의 건축 후학들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이하 ‘김태수 건축장학제’)다. 올해로 스물여덟 해를 맞는다. 그의 나이 55세에 시작한 일이다.

김태수 건축장학재단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생이 한국의 젊은 건축인들에게 교육적인 차원에서의 세계 건축여행을 지원함으로써 보다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여행경비와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절차를 지원해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1992년에 첫 장학금(Fellowship)의 수상자를 배출한 후 2018년까지 27명의 수상자가 뒤를 이었다. 한해의 건너뜀 없이 1년에 1명씩 꼬박꼬박 선발해 온 결과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는 수상자에게 미화 $8,000을 지급하였고, 1998년부터 2017년까지는 미화 $10,000을, 2018년부터는 $12,000을 지급하고 있다. 물가 상승에 따른 해외여행경비의 실질적 효과를 염두에 둔 조치로 이는 재단이 진정으로 수상자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자료이다.

김태수 건축장학제 역대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이 제도가 매우 의미 있는 역사를 써왔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조영돈(1992년, 제1회, (주)유선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대표), 장윤규(1993년, 제2회, 운생동 공동대표 겸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 이충훈(1994년, 제3회), 김혜경(1995년, 데코토닉 대표, 제4회), 박상현(1996년, 제5회), 한상범(1997년, 제6회, 우리동인건축사사무소 대표), 홍순재(1998년, 제7회, J-Form건축사사무소 대표), 최진석(1999년, 제8회, ONE O ONE Architects 소장, 사진), 지정우(2000년, 제9회, 미국 씬시네티대 건축과 교수 겸 EUS+Architects 공동대표, 사진), 권형표(2001년, 제10회, BAU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사진), 백은정(2002년, 제11회), 조성주(2003년, 제12회, AI건축사사무소 대표), 유주헌(2004년, 제13회, 제이에이치와이 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윤희(2005년, 제14회), 권태훈(2006년, 제15회, drawing.research.practice 대표), 나은중(2007년, 제16회, NAMELESS Architecture 공동대표, 사진), 송정준(2008년, 제17회), 유수범(2009년, 제18회), 남건욱(2010년, 제19회), 김태영(2011년, 제20회, 스튜디오 메조 대표), 이황(2012년, 제21회, 아주대 건축학부 교수), 이치훈(2013년, 제22회, SOA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사진), 손주희(2014년, 제23회), 김상협(2015년, 제24회), 허근일(2016년, 제25회), 정영훈(2017년, 제26회), 최재석(2018년, 제27회, Objectum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등 국내 건축계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쟁쟁한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27명의 장학제 수상자를 선발했지만 이들은 어떤 형식에서든 김태수 건축장학재단에 귀속되어 있지는 않다. 장학금을 수혜하고 여행을 다녀와서 소정의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까지가 수상자의 의무일 뿐 장학제라는 프레임으로 이들을 묶지 않는다는 것이 재단의 방침인 것으로 이해된다. 수상자 개인이 누리는 영예, 기쁨의 온도가 이 장학제의 특징이다. 원고를 준비하면서 산개한 역대 수상자들의 현재의 활약상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일일이 확인하는 수고를 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김태수 건축장학제의 한국측 운영을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이하, 목천재단)이 함께 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김태수 선생은 건축장학제를 지속가능한 장치로 만들기 위해 준비해왔다. 일차적으로 향후 20년 이상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금을 마련했고, 다음으로 운영 면에서의 활성화를 위해 목천재단을 한국내 파트너로 맞이한 것이다. 이로써 향후 역대 수상자들의 네트워크가 보다 체계화될 거란 기대와 함께 김태수 건축장학제가 지니게 될 민간 건축 제도로서의 권위와 명예가 크게 상승할 거란 예측을 가능케 한다.

김태수 건축장학제의 지원 자격은 응모자료 제출마감일 기준으로 만 35세 미만의 한국에서 건축학위를 받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선정절차는, 매년 5월 중순에 미국의 재단 사무실에서 최소 3명의 선정위원이 만나, 보내온 포트폴리오를 보고 2~4명의 1차 합격자를 선발한다. 1차 서류 심사에서 합격한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5월 말이나 6월 초에 서울에서의 인터뷰(2차 최종 면접) 심사를 하는데 이때는 김태수 선생이 한국에 들어와서 국내 디렉터 김정곤(건국대학교) 교수와 함께 하거나, 선생이 참석할 수 없을 경우 재단이 위임한 한국의 저명한 건축인 두 명이 인터뷰(Interview)하며 그 결과를 김태수 선생에게 알려주어 재단의 상임위원들에 의해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김태수 건축장학제의 기금은 전액 김태수 개인에 의하여 재단 차원에서 만들어졌으나, 현재 김태수 건축장학재단 홈페이지에는 다른 개인이나 기관에서 기금을 제공하는 것을 환영하며 장려한다는 메시지가 올라 있다.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이기보다는 뜻깊은 일에의 의지를 공유할 다음 세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한편 김태수 건축장학재단은 한국의 젊은 건축인의 해외여행을 위한 경비 지원 뿐 아니라, 서울대학교 건축과의 설계스튜디오 외래교수(Visiting Professor) 2인에게 각각 $5,000씩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의 예일대학교 건축과 대학원 1년차(First Year Building Project)에도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본문 사진 제공 : 김태수 건축장학재단 외

전진삼 논설위원은... 격월간 《와이드AR》 발행인 겸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대표. 『건축의 발견』, 『건축의 불꽃』, 『조리개 속의 도시, 인천』, 『건축의 마사지』 등의 건축비평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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