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에 대학에 입학을 했으니 건축에 발을 들인지 어느새 30년째다. 달수로 치면 360달, 날수로 치면 대략 10,800일, 시간으로는 259,200시간이다. 평균 하루 9시간을 건축 관련 일을 했다고 치면 97,200시간 정도 되겠다. 흔히 말하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체계적이고 정밀한 훈련에 필요한 1만 시간의 10배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렇다면 나는 건축분야의 엄청난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 투성이이던 89년 신입생 수준에서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 않다고 하면 너무 잔혹한 평가일까?
지난 30년의 시간, 아니 건축에 쏟은 97,200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체계적이고 정밀한 훈련에 쏟았던 시간은 1만 시간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건축설계에 관한 열정하나로 치밀한 계획 없이 앞 뒤 안보고 무작정 달려온 것 같다. 2003년에 사무소 개설을 했으니 내 이름 걸고 업을 한지도 16년째다. 올해 50인 내 나이 또래의 건축사들은 학창시절부터 진정한 건축설계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거나 사업적으로 자리 잡아 밥 먹고 살 정도가 되려면 나이 50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 말에 힘을 실어줬던 것이 루이스 칸에 얽힌 일화였다. 루이스 칸이 자신의 건축언어를 가지고 세계 건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람들은 그동안 무얼 했냐고 질문을 했고, 그때마다 그는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한다. 건축설계 일을 계속하면서 자기의 건축철학을 꾸준히 발전시켜 그 나이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한국 건축계에서는 젊은 건축사들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주로 SNS를 통해 그들의 소식을 접하는데, 자신들만의 확고한 방향성을 가지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일하는 모습에 나 자신도 힘을 얻곤 한다. 그들이 50쯤 되면 한국 건축계를 이끄는 훌륭한 건축사들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안정되지 않은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내가 건축설계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건축사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재미였던 것 같다.
자연환경을 뺀 거의 대부분의 인공 구조물인 건축물을 설계하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무언가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어떤 분야든 너무 재밌는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축사라는 직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업가와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이 모두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적으로 두 가지를 다 갖추기는 무척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서로 상충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바라는 건 건축사라는 직업을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별히 여기에 언급하지 않겠지만 요즘 건축사들을 괴롭히는 여러 대내외적 문제들이 그런 생각의 결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50이라는 나이에 아직도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루이스 칸처럼 확고한 건축철학을 만들어 내지도 못했지만 자부심과 재미를 잃지 않는 한 건축사로 업을 계속하며 살아가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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