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진료하고 나서 그의 진료를 의료기기 업체 기술자에게 승인 받을까? 방사선과 의사가 X-ray 기기를 사용해서 촬영해도 기기 제작자에게 승인을 받지 않는다. 변호사 역시 업무를 법무부 공무원에게 승인 받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건축사는 왜 비 건축사이며 비전공자에게 승인 절차를 진행하는가?
당연해 보이는 이런 행위에 대해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는 행정업무라고 치부하지만, 건축 인허가업무는 건축에 대한 의도와 내용, 취지를 모른다면 판단할 수 없다. 아주 단순하게 건폐율, 용적률이라는 개념도 건축을 공부하지 않은 이들은 무슨 말인지 모른다. 용적률이 왜 지역, 지구마다 다른지 모른다. 의도도 이유도 모른다.
우리나라 건축 인허가 과정을 보면 수많은 논란과 지속되어온 문제점이 많다. 경우마다 다르고, 때마다 다르다. 아주 황당한 일들은 건축법에 존재하는 항목이 실제 인허가 과정에서 거부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예를 들면 다중주택과 다락방 조항의 경우 가장 많이 인허가 과정에서 불허되는 사례다. 법에 있기 때문에 노골적 불허는 아니지만, 심의과정을 거치면서 단서 조항이 붙어가면서 거부된다. 이유는 준공 후 불법에 대한 예견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느닷없이 나오는 각종 사고 등이 계기로 만들어진 심의 대상이 되면서 절차가 복잡해지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각종 심의결과끼리 충돌하기도 한다. 꼬일 대로 꼬인 이런 난맥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심각해지고 있다. 시간이 지연되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상당해, 발생되는 경제적 부담 증가는 누가 책임지는가? 건축전문가로 십 수년 공부와 시험, 경력을 통해 국가로부터 공인 받은 전문 자격자인 건축사들도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시험대 위에 오른다. 한마디로 판단하지 마라는 것이 태반이다.
과연 우리 대한민국은 건축사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근본적인 분노와 허탈감이 동시에 존재한다. 혹자는 건축사에게 아주 미시적이고 디테일한 세부항목을 들이대면서 공격한다. 과연 타당한 것인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건축사는 건축에 대한 비전과 미래와 현재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종합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로 인정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모든 악기의 제조법을 굳이 알 필요 없고, 의사가 처방하는 모든 약의 화학적 제조법을 알지 못해도 적합한 처방을 하는 것과 같다. 건축사는 건축에 관한 모든 요소들, 구조를 비롯해서 전기, 설비 등의 적합한 용도와 내용을 활용하는 것이고 그 정점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최종 건축의 완성에 역할이 있다. 건축사의 전문적 첫 단추는 ‘사회로부터 이런 건축을 하겠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고, 그 선언으로 법적 인허가 과정을 신청하는 것이다. 국가 전문가인 건축사가 무작정 인허가 신청을 하지 않는다. 모든 과정에는 건축사의 이름과 자격증을 담보로 날인을 하고, 책임지며 진행한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미 건축사의 책임과 법적 추궁 제도는 과다할 정도로 성문화되어 있다. 난마처럼 얽히고, 의심의 눈초리로 건축사를 대하는 대한민국 사회. 이젠 수십 년의 이런 적폐 시스템을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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