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주택공급정책 방향 재설정해야
“반복적 악순환은 시스템의 문제…
아파트 재건축 민간 주도에서 공공주도의 복합개발도 고려할 필요 있다”
아파트 재건축과 같은 정비사업 수주전은 각종 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받는다. 조합 설립 후 진행되는 정비사업 시공사 수주전은 해당 조합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금품이 오가는 등 비리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작년 4월과 8월에는 경찰이 서울 강남권 아파트 재건축 수주비리 의혹을 받는 A건설과 B건설을 압수수색을 한 바 있다. 사업비 수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재건축 지역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수주기획사와 홍보대행업체를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선물과 현금 등을 제공한 혐의다. 당시 조합원들에게 제공한 금품 규모는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사업 관련 비리를 막기 위한 각종 제도 시행이 무색할 정도다.
◆ 아파트 재건축 중심의 주택정책 사회적 소통 차단
도시공간구조 심화시켜
이런 재건축 사업과정에서 조합장, 건설사, 공무원 등의 끝없는 무더기 구속은 바로 주택건축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하는 게 옳다. 국내 주거형태 60%가 넘는 단지형 아파트들은 현재 여러 측면에서 방향선회가 필요하다. 특히 철저한 경제논리로 주택건축을 바라본다는 점과 고용이 제한적이고, 경제적 파급효과가 생활로 내려오지 않는 점, 그리고 산업구조 측면에서 작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지형 아파트 재건축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아파트 재건축 중심의 주택정책은 사회적 소통을 차단하는 도시공간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바로 아파트 단지들의 게이티드 커뮤니티화에 따른 문제다.
김도년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미래도시융합공학과 교수는 “최근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은 내부 지향적 공간구성과 폐쇄적인 단지계획으로 기존 가로체계와 도시 조직을 무분별하게 변형시키고 있다”며 “게이티드 커뮤니티에 따른 폐쇄적 환경과 단지의 조성은 기존 도시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 도시 가로망 단절과 생활 인프라의 불균형 ▲ 공동체 의식 약화와 아파트단지와 기존 주거지 주민간의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월간 건축사 2월호 건축담론 참조>
도시 쇠퇴와 인구정체가 본격화되면 아파트 단지의 지속적 확대·재생산은 독(毒)이 된다. 지난 2월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에서 아파트 빈집 문제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현재 노후아파트 빈집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매물을 포함한 빈 집의 수는 2013년 10월 기준으로 약 820만 가구로 이 중 절반이 넘는 약 471만 가구가 분양아파트에 임대아파트 등을 더한 공동주택이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노후 아파트는 단독 주택보다 빈집 상태가 장기화되기 쉽다”고 전한다. 매물로 나온 아파트가 빈 집이 되는 이유는 부모와 자녀간 상속이 많기 때문인데, 단독주택은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만 매각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이 같은 처분이 불가능하다는 것. 노후 아파트를 임대·매각하지 못해 빈 집 상태로 방치된다는 것이다.
민간 주도의 재건축 등은 근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의 현명한 개입이 필요하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리고 사회 공동체적 관점에서의 주거정책 설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건축사는 “도시 경관 획일화, 도시 가로 및 사회적 주거 구성체계 파괴를 막을 필수적 조치로 공공이 각종 재건축·재개발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중소규모 단독주택, 근린생활시설 등의 생활건축은 지역경제 생활권의 순환구조에 있으며, 건축시장을 세부적으로 나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일자리, 주거복지를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또 도시재생 뉴딜을 얘기하는 바로 지금이 ‘생활건축’ 활성화를 위한 적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B건축사는 “일자리창출을 외치는 정부가 도시재생과 연계한 생활건축 활성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생활건축은 개별화돼 있기 때문에 국내 건축관계자들이 성장하고 생활할 수 있는 작은 일자리, 인력시장이 무수히 만들어질 수 있다”며 “동별 디자인 특화시장도 확대해 소수가 아닌 다수의 건축시장 관계자가 개입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거 밀집도 높을수록 사회적 신뢰 부정적”
HUG 최신 보고서…“근린환경, 사회적 신뢰 형성에 중요”
“근린시설·대중교통 편의성 확보…대면접촉 기회 늘려야”
아파트와 같은 주거 밀집 지역에 살거나 대중교통이 아닌 승용차로 통근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공동체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근린시설과 대중교통 편의성을 확보함으로써 이웃끼리 접촉할 기회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하승현 HUG 주택도시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HUG가 발간하는 ‘주택도시금융연구’ 최신호(제3권 제2호)에서 ‘근린환경이 사회적 신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통해 주거환경이 다른 이들과의 신뢰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밝혀냈다.
하 위원은 이번 연구에서 매년 서울시가 시행하는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의 데이터 3만4870건(2015년 기준)을 연구에 활용했다. 주거유형, 소득, 평균 도로 폭, 보행비율, 통근비율 등이 개인의 사회적 관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 “아파트 거주자 신뢰도 낮아”
밀집도가 인간관계에 영향
주거유형에 따른 분석결과를 보면 아파트 거주자는 단독주택·다세대주택·다가구주택 등 다른 유형의 거주자에 비해 신뢰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 위원은 “주거 밀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면 상호작용해야 하는 타인의 수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인간관계에 대한 감정적 과부하에 빠지고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게 된다는 가정을 뒷받침하는 결과”라며 “높은 주거밀집도는 오히려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점유유형으로 보면 자가와 전세 거주자의 신뢰도가 월세 거주자보다 높았다. 이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나 거주기간이 사회적 자본과 비례한다는 기존 연구와 일치하는 부분이라는 설명이다.
개인의 소득수준과 관련해서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의 사회적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타인과의 접촉 기회가 많고 다양한 규범과 신뢰가 요구되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소득 상위 1%에 속하는 월 평균 소득 750만원 이상의 구간에서는 노히려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하 위원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경제적 지위가 상승하면 신뢰가 하락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사에 포함된 소수 고소득자의 평균적 신뢰수준이 낮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통근수단별로 보면 걷거나 택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근하는 사람들이 승용차나 기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신뢰도가 높게 나타났다. 다른 사람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통근수단을 이용할수록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 보행환경 위협하는 도시체계 개선 필요
거주지 주변 환경도 사회적 신뢰 형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줬다. 1인당 공공체육시설 면적이나 공원 면적은 사회적 신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각 자치구의 평균 도로폭은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하 위원은 “차량 위주의 도시체계가 보행환경을 위협함으로써 사람들이 도보활동을 꺼리게 되면서 사람들 간의 신뢰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통근비율이 높을수록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주거용도로 획일화된 지역보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활동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의 신뢰가 높을 수 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공업시설 역시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공업지역에서 발생하는 공해, 소음, 공동화 현상 등의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의 보행과 상호작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 위원은 “사회적 신뢰를 잘 형성하려면 대면 접촉의 기회를 늘릴 수 있는 보행환경, 공원이나 체육시설과 같은 근린시설, 대중교통 편의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