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재 GDP(국내 총생산)는 2018년 10월 기준 세계 11위, 국민 1인당 GDP는 작년 2만9744달러로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나라들 중에서는 세계 7위에 랭크됐다. 올해는 처음으로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객관적 지표로 보면 완연한 선진국이다. 그것도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선진국이 되었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은 소위 선진국민들과 같이 사회를, 국가를, 도시를, 건축을 보고 있는가? 여전히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듯하고, 오히려 여전히 개발도상국 시대의 고도성장을 꿈꾸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있는 듯하다. 마치 훌쩍 커버린 성인의 몸에 걸 맞는 사고가 어긋나 사춘기를 겪는 불일치가 있는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과거 어렵고 배고팠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의 일들을 계획하고, 해결해 나가는 방식에서도 과거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워낙 짧은 기간 내에 고도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의 특성상 여전히 과거의 힘든 시절의 세대들이 대부분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기인하고 있다.
과거 1995년 이전 10% 이상의 고성장 시대에는 높은 출산율에 의한 인구 증가와 도시 집중화로 인해, 급격히 도시가 팽창하게 되고, 그에 따라 건축의 양적 성장이 시급한 과제였다. 좀 더 경제적으로 보면, 개발도상국으로서 축적된 자본이 빈약하다보니, 적은 자본을 빨리 회전시켜 이윤의 양을 늘릴 수밖에 없게 되고, 그리하여 소위 ‘빨리빨리’가 모토가 되어야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몸집 키우기와 빨리빨리가 살아남기 위한 주요수단이 되어 ‘제대로’보다는 우선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켜야 했던 것이다. 또한 앞선 선진국의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베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벤치마킹하며 따라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수성도 물론 작용했겠지만, 경제성장기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한 역동적 시기를 겪고, 현재는 작년 2018년 2.7% 성장으로, 근래 5년간 3%대 위아래를 교차하고 있다. 선진국 평균 2.4%, 일본 1%와 비교하면 불황이라고 말하기는 오히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과거 10%대 성장에 비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우리의 정서일 뿐이고, 경제규모가 커진 선진국은 저성장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저성장 선진국으로서의 경제 상황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고와 행동을 요구한다. 서울대 교수님들이 공동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분석한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에서 보면, 무엇보다 더 이상 우리가 벤치마킹하여 따라가기만 해도 되던, 그 수준으로서는 앞으로는 퇴보할 수밖에 없고, 이제는 스스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여 처음 가는 길을 나서야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에 있었던 데이터가 아닌 스스로의 노하우를 축적해나가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저성장이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고성장 시대의 양적팽창 급류에 표류했던 질적성장이, 어느 정도 축적된 안정된 자금력을 바탕으로, 빨리빨리를 벗어나, 보다 차분하게 ‘사람을 위한 세상, 건축’이 가능해지는 시기가 시작될 수 있다. 이미 앞서가고 있는 선진국을 보면, 그것이 추측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즈음 일본의 성공적 도시 재생 프로그램도 1%대의 장기간 저성장 기조로 인해, 높은 경제성만을 따지던 기존의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적은 경제성이라도 지속적 질적 향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외국인의 입장으로 분석한, 오니시 유타카의 「선진국 한국의 우울」이라는 책에서는 이미 선진국인 한국이 소위 선진국이면 대두될 수밖에 없는 저출산, 고령사회, 저성장 등의 문제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의 상당 부분에는 스스로가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에 기인하는 면이 많다고 한다. 제반 문제들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에 걸맞는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그로 인하여 가능해진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변화된 사회를 달라진 방식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성장 3만불 시대의 건축은 이전과는 많이 다른 것들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또 이미 요구하고 있다. 그것에 누가 먼저 적응하여 변화하고, 또 누가 먼저 앞길로 나서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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