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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5분 만에 맛있게 구워주세요. 계산은 나중에 할게요.”

기사승인 2019.02.01  11: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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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빨리, 계획안 먼저 요구하는 관행 심각
저가, 외상수주 등 기획업무 관행 타파 및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받기 위한 노력 절실해
건축사 스스로 건축작업의 가치 존중해야


오늘도 A사장은 번지 하나 알려주며 '간단한' 계획안을 요구했다. 사업성만 확인되면 바로 계약할 테니 이틀 뒤에 보여달란다. 좀 더 적극적으로 건축작업의 가치를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득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런 전화에 익숙할 법도 하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마음 무겁다.
이런 계획안 요청에 성의 있는 작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계획에 집중하지 않으니 건축주가 만족할리 없고 사업으로 이어지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제공하자니 계약에 대한 확신도 없이 투입해야할 시간과 비용이 부담스럽다. 의뢰인과의 관계와 사무소 경영을 고려하여 기획업무와 계획설계의 중간 어디쯤에서 적당히 마무리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제아무리 간단한 기획업무이고 일정이 촉박하다 한들 이미 도면이 나가면 그 수치로 사업성을 따지고 건축사의 역량을 평가하니 이런 불공정한 게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
사업성이 나오면 계약을 하겠다?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계약은커녕 투입된 설계비도 지급이 어렵다는 말은 음식을 먹어보고 맛있으면 음식값을 지급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건축사가 작성하는 도면은 마트에서 제공하는 시식용 만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설령 하루 만에 작성된 간단한 도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학업과 실무과정 등 건축사의 오랜 노력과 경험의 결과물인 까닭이다.
사업의 방향에 대한 공유나 설계조건에 대한 협의 없이 계획안부터 요구하는 건축주들은 하나같이 싸게, 빨리, 예쁘게(혹은 돈 되게)를 요구한다. 충분한 사업성을 확보하는 계획안을 하루이틀 만에 보여달라고 하면서도 설계비는 나중에 지급하겠다며 다른 사무소에서 작성한 계획안을 버젓이 내어놓는 당당한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류 셰프에게 스테이크를 주문하면서 5분 만에 먹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일단 먹어보고 음식값을 지불하겠다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부드럽고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고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에 맞는 음식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도 라면 끓일 시간과 비용으로 스테이크를 요구하는 이들이 꽤 많다.
또, 일부 건축설계에 무지한 건축주들은 설계작업을 참 쉽게 입에 올리곤 한다. 컴퓨터가 다 그려주는데 할일 뭐 있느냐, 시간이 왜 그렇게 많이 걸리느냐, 종잇값 밖에 안 드는데 설계비가 왜 그렇게 비싸냐...
계약이고 뭐고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심정으로 마지못해 건축주를 설득하며 속으로 여러번 분을 삼키곤 했었다.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작업이라면 당신이 하세요!
물론, 건축사업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안하면 설계자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초기에 자금을 투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감수해야 하는 사업자가 기획업무와 계획설계 드는 비용 얼마를 아낀다는 것은 그만큼 사업의 가능성이 낮거나 사업에 대한 의지가 약하거나 사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랜 거래로 상호간 신뢰가 확보되지 않았다면 건축사가 작성한 도면 몇 장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축주는 쉽게 설득되지 않으니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런 불공정한 관행이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건축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가격경쟁력을 명분 삼아 저가수주를 일삼음으로써 소위 브로커의 활동영역을 보장해주거나, 시장의 질서에 앞서 손쉬운 기회에 양심을 저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자주 봐오지 않았던가. 협회에서 제 아무리 기획업무나 계획설계 제값받기를 외친다 해도 익숙한 방식대로 ‘평당 얼마’라는 식의 셈법과 ‘계획안 먼저’식의 업무 행태를 이어간다면 건축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보다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받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원가를 절감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금세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제대로 일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기란 그렇지 않다. 시장의 질서와 업계 공통이 추구하는 가치를 먼저 이해하고 실천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효과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거듭 노력해야 건축의 질이 향상될 터, 건축의 미래는 여기서부터 비롯되리라 확신한다.

정민교 건축사 (주)에스티에이건축사사무소, 건축사신문 편집주간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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