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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에서 일출과 함께 선사의 새벽을 느끼다

기사승인 2019.02.01  10: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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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15인승 쏠라티로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한다.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성과 범어사 그리고 광안리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2번 정도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새벽 4시경 자갈치 시장으로 들어선다. 새벽 아침을 바다향 맡으며 생선구이백반으로 할 예정이다.
자갈치 시장의 분주함은 덜한 시간이지만 생선 굽는 냄새는 코를 진동한다. 우거지국과 어울린 생선구이로 아침을 하고 30여분을 달려 금정산 중턱인 남문으로 향한다.

금정산성의 성곽을 따라 걷는 산행은 늘 부산의 환상적인 해돋이를 눈으로 담을 수 있는 행운이 가득한 길이다.
역시나 오늘도 다름이 없다.
산성에서 바라본 모습이나 범어사에서 바라본 일출은 가히 일품이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과 주변의 양떼구름까지 푸르스름하게 다가오면 상쾌한 바닷바람과 함께 가슴이 설렌다.

○ 금정산성
금정산성(金井山城)은 사적 215호로서 1971.2.9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성으로 금정산에 언제 처음으로 성을 수축하였는지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조선 숙종(肅宗) 29년에 국방에 대한 새로운 인식속에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축성된 것이다. 성은 내·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성벽은 자연석으로 쌓았지만 중요한 부분은 가공한 무사석으로 쌓았으며 성의 길이는 17,336m이고, 산성의 높이는 1.5m~3m정도이며 성의 총 면적은 약 8,304,132제곱미터에 동서남북의 네 성문을 둔 방대한 산성이었다.
 
일제강점기 시가지 계획의 이름 아래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축이 철거 되었으며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축도 민가가점유하여 훼손당하고 망월사지를 중심으로 성곽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1972년부터 계속 성문과 성곽을 복원과 보수를 계속하여 국방유적으로 길이 남겨야 할 산성은 이로써 어느 정도의 면목을 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본래 이름은 동래산성이지만, 금정구로 분구가 되면서 금정산성이라 부르고 있으며, 금강공원에 있는 케이블카나 산성버스(온천장에서 203번)를 이용하여 정상에 올라간 뒤, 걸어서 10분쯤 가면 현재 4km 정도 남아 있는 성벽과 동서의 두 성문을 볼 수 있다. 산성이 있는 금정산은 1일 등산코스로도 많이 이용되며 금강공원과 북문쪽의 범어사도 함께 둘러보아야 할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 범어사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때(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건했다. 화엄경의 이상향인 맑고 청정하며 서로 돕고 이해하고 행복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설립된 사찰로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리운다.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선승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원효대사 · 표훈대덕 · 낭백선사 · 명학스님과 경허선사 · 용성선사 · 성월선사 · 만해 한용운선사 · 동산선사 등 고승들이 수행 정진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950년대 동산스님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후 한국근대불교를 이끌었으며,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사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수행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하였고, 사부대중의 수행정진과 화합을 바탕으로 2012년 11월 총림으로 지정됐다. 지유대종사를 초대방장으로 모시고 부산과 영남 지역은 물론, 우리나라 불교의 중심 ‘선찰대본산 금정총림’으로 자리매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계문은 가람 진입로에 순차적으로 세운 삼문(三門)중의 첫째문으로 산문(山門)이라고도 하며, 기둥이 나란히 서서 지붕을 받치므로 일주문이라고도 한다. 조계문은 기둥 2개만으로 지지가 되는 여느 사찰의 일주문들과 달리 자연암반위에 돌기둥 4개를 세워서 정면 3칸을 형성했다. 한국사찰에서는 그 유례가 없을뿐아니라 자연과 조화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광해군 6년(1614) 묘전화상이 창건한 후 숙종 20년(1694)에 수리했으며, 숙종 44년에 돌기둥으로 교체해서 지금에 이른다. 대웅전을 지은 조헌 스님이 도대목을 맡았던 까닭에 두 건물의 법식이 거의 동일하며, 조선 중기의 다포식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보물 제 1461호이다.

글 일부 출처 : 범어사 홈페이지, 금정산성 홈페이지,   범어사 경내 안내문 설명 참조

김영훈 건축사 (주)어반플레이스 종합건축사사무소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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