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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전의 집, 어떻게 살고 싶은가?

기사승인 2019.01.17  11: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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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십년 전의 일이다. 여수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땅에 단독주택을 의뢰 받아서 설계를 하게 되었다. 건축주의 처삼촌이 되는 분의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나 인사를 주고받았다. 건축주를 처음 만나게 되면 으레 그렇듯 그동안 주택을 설계하면서 가지게 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단독주택은 흔하지 않은 프로젝트지만 매년 한두 건씩 그동안 열 건 이상을 하다 보니 할 얘기는 많았다. 그런데 아직 본격적인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그가 내 말을 끊으며 나이를 물었다. 건축주의 나이가 나보다 한 살이 적었는데 호형호제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일을 수주하러 온 나에게 이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란 말인가?
그렇게 제안했던 건 건축주가 집을 지어야 하는 절실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모님 뿐 아니라 조카까지 있는 형과 같이 살고 있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의 얘기에서 가족 구성원의 복잡한 주거 상황을 읽을 수 있었다. 치과의사인 그는 직업의 고충도 함께 얘기했는데 밤낮으로 시달리는 그의 일상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설계자와 건축주의 관계가 아니라 내가 형이 되어 아우를 살피는 마음으로 설계를 맡아주기를 원했다. 두 집으로 나누어 살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한 집에서 식구들이 갈등 없이 지낼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했다. 낮에는 진료 스트레스를 받고 밤에는 식구들의 갈등으로 도무지 견딜 수 없어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내가 그의 고충이 해결될 수 있는 집을 설계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것일까? 그 날 잠시 나누었던 대화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건축사가 집이 아닌 삶에 관한 얘기를 이처럼 할 수 있는지 놀랐고 이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의 복잡한 가족관계의 일상이 소통되고 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집을 설계할 수 있었을까? 성품이 만만찮은 부모님과 혼자된 형과 조카, 아내와 대학생인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는 집이어야 하는데, 물리적인 삼 세대 주택이 아니라 화학적인 복합 세대 주택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어야 한다.
만난 지 삼십 분 만에 건축주와 형제관계를 맺은 아우의 인생 고민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가 제시한 설계기간은 2년, 설계비는 공계약서空契約書에 알아서 적으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인생 고민을 안겨 드렸으니 설계비는 형님이 정하라고 했기에 나도 아우에게 받을 금액으로 계약할 수밖에.
내가 여수를 가고 아우가 된 건축주가 부산을 다녀가기도 하면서 2년이라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 지났다. 나대지裸垈地인 주변 상태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땅이었지만 집이 다 지어지면 사방이 막힐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한 필지를 추가로 매입하자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바다가 바라보이는 여건이 확보되었다. 이런저런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쳐 안을 수십 번 고쳐내며 설계가 마무리되면서 나의 숙제도 끝이 났었다.
불혹을 지난 한 사람의 인생 고민을 해결하고자 짓는 집, 설계자인 내게 형님이라 부르며 건축주의 자리를 넘겨서 고민의 해답을 찾으려고 했던 그를 떠올려 본다. 집을 짓는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새 집에서 지내는 가족의 삶은 평안해졌다고 한다. 건축주와 설계자는 갑을의 관계가 아니라 권한을 위임하고 받는 사이일 때 집짓기의 결과가 가장 만족스러워야 한다.
매일 새로운 날이듯 2019년으로 맞이한 올해도 새해라고 큰 기대로 시작한다. 또 어떤 건축주가 자신을 대신해서 집짓기를 부탁한다며 설계를 의뢰해 오기를 기다리며 하루를 맞이한다.

김정관 건축사·수필가 도반 건축사사무소<부산광역시건축사회>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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