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잘못 끼운 결과, 땜질 대책만 양산

①이중규제 ②보이지 않는 현장 ③공사지연·책임소재 불명확
규제 ‘이중, 삼중’ 만들기 전 폐해·부작용 따져봐야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30일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정책의 당위와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가 되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이 지적은 포항지진 필로티 대책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모든 규제는 안전, 균형, 공익 등 선한 의도를 표방한다. 내세운 규제의 선한 의도만 보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규제가 의도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엉뚱한 부작용을 키우는 경우가 더 많다. 규제의 역설을 보여주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현장관리인 제도’의 경우 건축물 안전을 위해 소규모건축공사에도 현장관리인을 배치토록 했으나, 공사현장에 비해 건설기술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일대 혼란을 가져온 바 있다. 당시 현장에 상주해야 하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1명의 현장관리인이 무수히 많은 현장에 마구잡이식으로 배치되고, 현장을 무단 이탈하는 불법이 판쳤다.
부실을 막고자 세운 대책이 오히려 부실을 키우는 규제의 역설로 작용한 셈이다.

치밀하지 못한 정책설계는 또 다른 규제 양산의 시발점이다. 사고라도 나게 되면 ‘속도전식 입안’이라는 규제 신설 방정식이 이중, 삼중 규제를 만들고 애꿎은 건축법만 만신창이가 된다. 그리곤 현장의 아우성에 뒤늦게 대책이 또 나온다. 부작용을 막을 땜질식 대책만 줄을 잇는다. 묻지마 규제,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 대책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필로티 대책’ 문제를 짚어본다.

① 이중·삼중규제 덫에 빠질라…대한건축사협회 감리부분 주장 대안,
   국토부 시행령 개정안으로 발의돼

국토교통부는 10월 12일 3층 이상 필로티형식 건축물에 대해 감리중간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주요공정을 추가하는 내용의 ‘건축법 시행령’을 또 다시 입법예고했다. 지난 7월 31일 3층 이상 필로티구조건축물의 관계전문기술자 협력 확대를 골자로 한 ‘건축법 시행령’을 잇는 2차 대책안이다. 불과 3개월 만에 필로티 대책이 또 나온 셈이다.

내용을 보면 감리자의 감리중간보고서상 공사의 공정을 추가했다. 3층 이상 필로티건축물의 ▲ 기초공사 시 철근배치 ▲ 하중이 전이되는 기둥 또는 벽체의 철근배치 ▲ 하중이 전이되는 보 또는 슬래브의 철근배치를 완료한 경우 감리자가 감리중간보고서를 작성해 건축주에게 제출토록 했다. 필로티 건축물의 공사감리자 감리공정에서 감리자의 확인 시점·범위를 구체화한 것인데, 포항지진 필로티건축물 부실시공 문제를 해결할 가장 합리적인 정공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내용이 기존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두고서 이중규제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내용은 대한건축사협회가 지난 9월 국토부에 제출한 필로티 건축물 안전확보에 대한 의견내용 그대로다.

건축사협회는 필로티 건축물은 다세대, 다가구 대다수가 허가권자 지정 감리대상 건축물로서 감리세부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에 필로티 건축물의 경우 ‘하중이 전이되는 기둥 또는 벽체, 보 또는 슬라브 철근 배근 시 감리확인 공정’을 추가하는 것이 현실을 고려한 효과적인 법안 개정이라고 의견을 낸 바 있다. 국토부가 이번에 건축사협회(안)을 그대로 반영해 입법예고한 것이다.

이번 입법예고에는 세대수 제한 없이 주택으로 사용하는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다중주택, 다가구주택까지 허가권자 지정 감리대상 건축물에 추가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렇다면 기존 ▶ 내진기준 강화 ▶ 부실시공 방지책 시행 ▶ 필로티 건축물 구조설계 가이드라인까지 마련된 상황에서 이번 감리부문 중감감리보고서 작성까지 더해지며 이전 관계전문기술자 협력의무화 내용은 이중, 삼중으로 더해지는 규제로밖에 볼 수 없다. 분명 불필요한 이중규제다.

② 현장은 안중에 없다

사회적으로 큰 안전사고가 있게 되면 우후죽순 규제가 양산된다.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규제는 ‘지킬 수 있는 규제’여야 한다. 그래야 실효성, 원하는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정책의 의도는 좋지만 시장을 무시하고 정책을 수립한다면 되레 부작용만 낳고 또 다른 땜질 대책만 양산된다.

당초 필로티대책에서 현장의 목소리는 빠져 있었다. 정부는 지난 5월 25일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이 포함된 범 정부차원의 ‘지진방재 개선대책’을 발표하며, 현장여건을 반영하지 않은 필로티 규제책을 내놨다. 국토부 내부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이후 여러 실효성 논란에도 대책원안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감리과정에서 고급기술자 협력부분까지 끌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10월 8일 참고·해명자료를 통해 “감리단계에서의 협력은 주요공정에 대한 구조전문가의 ‘검토’를 거치도록 하는 것으로 건축구조기술사 인원부족을 고려해 ‘건축구조기술사’를 포함한 ‘건축구조’분야 고급이상 기술자의 협력을 받도록 하는 방안으로 추진중에 있다”고 밝혔다. 기존 ‘건축분야 고급기술자 이상 자격’을 강화해 인력수급 범위를 더욱 좁혔다.

사실 감리의 경우 구조분야 ‘고급기술자, 특급기술자’가 3층 이상 필로티 건축물 연간 약 2만4천여 건의 현장을 일일이 감리한다는 건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A건축사는 “특급기술자에 해당하는 건축사가 전문성이 낮은 고급기술자 협력을 받도록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보통 고급기술자는 대학졸업 후 기사자격으로 경력 4년이면 등급을 취득할 수 있다. 의사가 수술 시 의과대학 학생에게 검토·확인받게 한다는 것에 빗댈 수 있는데, 현장 오작동 가능성이 크며 되레 부실·혼란만 가중시킨다”고 밝혔다. 또 “전국적으로 구조기술사가 약 600여 명 정도뿐이지 않나. 시장 혼란·오작동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 현장 목소리에 귀 닫는 건 문제 아니냐. 현장은 찾아나 봤는지, 업계현실은 정확히 아는 건지 답답할 뿐이다. 시행착오 혼란은 관계자와 영문도 모르는 정책수요자인 국민만 지게 된다”고 전했다.

③ 공사지연, 책임소재 불명확

건축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감리부문에서 적시에 고급기술자를 수급한다는 게 쉽지 않아 공사지연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 이럴 경우 비용문제, 책임소재 여부에 대해선 정부차원에서 어디서도 논의되거나 언급된 바가 없다.

B건축사는 “현장에서 철근 배근하고, 콘크리트 레미콘이 대기하는 상황에서 고급기술자 인력수급이 하루라도 지연돼 버리면 관련된 모든 비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현실적으로 공사를 하다보면 당초 공정계획과 달리 철근 배근시기가 하루 이틀 연기될 수 있는데, 이 경우 구조분야 고급기술자의 현장방문 시기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조율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특히 구조분야 고급기술자는 대부분 사무소 직원일 텐데 계약은 업체랑 해야 되는지, 고급기술자 개인과 해야 되는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에 대한 검토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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