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세운상가 탐방기

▲ 세운상가 광장 전경

2018년 8월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회의는 건축탐방과 곁들어 진행했다. 늘 건축사회관 세미나실에서 회의를 해왔으나, 국제위원장님의 제의로 기회를 만들어 온 세상의 기운이 모이기를 소망했던 세운상가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 탐방기를 통해 세운상가의 어제를 간단히 살펴보고 만들어 가고 있는 오늘의 모습과 만들고자 하는 내일을 한발, 두발 걸어 다니며 살피는 만보객의 눈으로 묘사하고자 한다.

김인범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위원/에스알씨 건축사사무소

세운상가에 대한 기억은 비단 서울시민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도면만 주면, 혹은 도면이 없이도 탱크며 잠수함, 인공위성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고 고칠 수 있다는 호기로움이 서려있음도 들어 봤을 것이고,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테이프와 게임기, 각종 전자기기의 천국을 상상해 봤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인 세운상가(군)은 김수근의 설계로 1967년부터 1977년까지 차례차례 완공되어 1970~80년대 황금기를 맞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침체기를 거치자 전면 철거 후 종묘-남산을 잇는 녹지공원으로의 변신과 고밀도 주변 재개발이 계획되기도 했었다. 서울시는 2010년대 중반, 도시재생의 바람 속에 도시 건축적 유산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망으로 세운상가를 존치하기로 결정하고 상가와 주변을 활성화시키고자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공식 탐방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다시세운광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세운상가와 세운교, 청계상가 및 대림상가를 지나며 구석구석 세운상가의 매력을 살펴보는 코스다. 국제위원회도 위의 코스를 신성덕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탐방했다. 문화해설사의 자세한 안내와 함께하니 곳곳에 새겨진 시간의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신성덕 문화해설사는 문화해설 경력만 13년차로, 중구 문화해설로 시작, 한양도성에 관심을 갖게 돼, 한양도성 해설, 을지로 3, 4가 해설사로 있으며 세운상가 해설도 겸하고 있다, 학교 강단에서 20여년 강의 후 인생 2막으로 해설사에 도전한 멋진 분이다.

본격적인 탐방은 경사진 다시세운광장 하부 유물전시장에서 시작된다. 공사 중 발굴된 조선시대 중부관아터와 일제시대의 유적 및 유물을 볼 수 있다, “발굴터 아래 표시된 해발 고도는 어떻게 정할까요?”, “우리나라의 각 시도의 거리를 측정하는 원점은 어디일까요?” 신성덕 해설사가 알 듯 하지만 정확히는 잘 모르는, 지리시간에 배웠음직한 내용들로 질문을 던지며 답을 유도하니 호기심이 새록새록 돋는다. 질문에 답을 맞추면 상으로 해설사의 축하 악수를 받을 수 있다.

계단을 올라 3층으로 올라서면 상가 입구에 ‘세봇’이라는 높이 약 3미터 가량의 태권브이를 닮은 거대 로봇이 환영 인사를 한다. 듣기로는 이 곳 터줏대감 장인들의 기술력과 젊은 예술가, 엔지니어들의 상상력, 3D프린팅 기술이 어우러져 세봇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구기술의 협력으로 4차 창의제조산업의 거점이 되고자 하는 세운상가의, 여전히 호기로운 마스코트다. 보는 이가 다가가면 스르르 말을 하고 움직이니, 아이들만 아니라 어른들도 신기해하고 좋아하겠다. 여기서 다시 해설사의 질문이 들어선다. “‘세상의 기운을 모은다’에서 세운상가의 이름이 지어졌는데, 여기서 말하는 ‘기운’이란 어떤 기운일까요?” 힌트는 ‘상가’의 목적에 있다. “여러분들도 오늘 그 ‘기운’을 흠뻑 받고 가시길 바랍니다.”라며 해설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의 세운옥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세운옥상에서 펼쳐진 경관이 정말 호쾌하다. 서울 시내 어디서도 이런 경관이 없을 정도다. 이제까지는 세운상가 주변의 지지부진한 재개발 상황 덕에 여전히 낮게 깔려있는 건물들로 막힘없는 뷰(view)다. 전망대에 서면, 북쪽 종로방향으로는 종묘와 뒤편의 북악산, 저 멀리의 북한산까지 서울의 역사와 자연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 도심방향으로는 남산을 향해 길게 뻗은 세운상가 군과 시간이 정체된 듯 낡고 허름한 주변 건물, 좀 더 멀게는 높고 낮은 빌딩들이 듬성듬성, 빽빽한 현대서울의 복잡다단한 도시경관을 굽어볼 수 있다. 세운 옥상의 전망데크에서는 공연도 열린다. 심지어 배달음식을 먹는 것도 제한하지 않는다하니 인근의 직장인들과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풍경도 얼마 후면 조금은 바뀔 예정이다. 세운상가의 양쪽 주변일대 일부구역의 재개발이 확정되어 분지 같은 풍경이 빌딩 숲의 풍경으로 대체된다. 유럽의 도시경관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성당, 궁궐, 타워 등 기념비적인 건축이 일정한 높이의 주변 주거, 상업 건물 군과 확연히 대조된다는 점이다. 기념비 건축은 일종의 랜드마크로서 도시전체에서 바라볼 수 있고 도시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데, 우리의 도시건축은 저마다 랜드마크가 되고자 올라가려 하니 결국 어떤 건물도 랜드마크가 되지 못하는 격이 아닐까 싶다. 낙후된 저밀도의 도시조직을 중밀도, 고밀도로 치환하면서도 골목공간이 주는 인간적 척도의 매력과 수평적 랜드마크로서의 세운상가라는 도시적 특징을 유지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 세운중정

옥상을 가로질러 반대편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8층, 7층, 6층, 5층은 원래 주거용도로 사용되었던 층이다. 현재는 대개가 오피스텔로 사무실의 용도로 쓰이고 있으며, 주거용도는 몇 세대가 안 된다. 주거용도의 층들은 중정형태의 보이드로 뚫려있으며, 지붕의 천창이 비는 막고 빛은 들인다. 폭이 깊고 길이가 긴 건물형태에 주거를 끼워 넣다보니 나온 건축가의 해결책이겠다. 현시대의 건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스케일의 이 내부중정은 꽤나 색다른 공간감을 자아낸다. 수직적인 볼륨으로 가득 찬 세운상가의 상징적인 공간이라, 실제로 사진, 영화촬영 및 전시, 행사 등 공용공간으로서 빛을 발한다.

내부중정이 시작되는 5층엔 팹랩서울(FABLAB Seoul)이라는 메이커(제작자)들을 위한 스튜디오가 있다. 일종의 제작소이자 연구소다.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CNC머신 등 디지털 제작 장비들을 공유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 모든 사물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세운상가의 정신에 제대로 동기화된 제작소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청소년들이 각자가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를 스텝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만들고 짓는 것의 설렘을 잘 알고 있는 우리 건축사들이기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수많은 질문공세를 쏟아 부었고 잠시 스쳐가기엔 아쉬움이 남는 방문이었다.

세운상가엔 이처럼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4차 산업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시간상 탐방에서 제외되었지만, SE-Cloud란 청년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공간과, 세운데크의 메이커스 큐브에는 청년 창업가들이 독창적 아이디어를 사업화시키기 위해 일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전기, 전자제품을 만들고 파는 상점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업을 이어가고 있다. 신(新), 구(舊)가 같이 모여 있는 이런 장면이 다시세운 프로젝트가 의도한 바 일 것이다.

▲ 세운 베이스먼트

이번엔 지하로 내려간다. 본래 보일러실이었던 곳을 메이커들을 위한 작업, 전시, 교육, 체험 등 다목적 용도의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세운베이스먼트가 있다. 현재는 서울시립대 세운캠퍼스로서 건축과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교육 및 세미나를 진행할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여 기술, 창업 및 도시재생, 인문교양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약속한 1시간의 탐방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세운베이스먼트의 매니저에게 세운캠퍼스의 활동 개요를 듣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청계천 개발로 끊어졌던 세운교가 세운상가와 대림상가 사이에 다시 연결됐다. 세운교에서 내려다보는 청계천의 모습이 옥상에서 바라본 경관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청계천 동쪽과 서쪽으로 깊숙한 도시풍경이 전해진다. 세운교를 지나 이제 탐방은 국제위원회 회의 장소로 예약한 파트너 라운지 앞에서 끝난다. 파트너 라운지는 다시세운 프로젝트에서 운영하는 공간으로 주변 공동체의 회의 및 교류를 위해 공간을 대여하고 있다. 다들 바쁜 시간을 쪼개서 만나는 국제위원회 회의라 탐방에만 온전히 시간을 내어줄 수 없음이 아쉽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운상가와 주변을 위, 아래로, 앞, 뒤로 누비며 이 거대한 건축물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들을 아주 조금 맛볼 수 있었다. 탐방에 참여한 국제위원회 위원 모두 고생해주신 신성덕 문화해설사에게 감사를 전하며 부족한 탐방은 다음을 기약했다.

▲ 세운옥상에서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회의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곡차곡 삶이 담겨지는 건축의 모습, 삶의 활력이 만들어 가는 공간의 생생함으로 가득한 세운상가.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독자분들도 온 세상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서 이 가을, 선선해지는 날씨에 상서로운 기를 받으며 산책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다시세운 프로젝트 및 탐방안내, 예약에 관해 아래 웹페이지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ewoon.org 혹은, 검색창에서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검색하면 된다.

▲ 세운상가 3층 평면도(위:기존, 아래:계획) 자료 : 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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