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산업을 건설까지 포함해서 본다면 건축사 업무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이런 이유로 어느 나라건 건설이 훨씬 규모가 크고, 자본의 흐름이 커서 힘의 우위 면에서 차이가 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건축설계와 건설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다. 중국의 경우 건축 설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인이 창업할 수 없는 국가 기반 산업이었다. 그래서 대학 부설 설계사무소들은 엄청난 규모로 운영되고, 국영체제였다. 왜 이들은 건설과 통합하지 않았을까?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부 엔지니어적 속성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건축 사업 분야는 하나같이 건설과 건축이 분리되어 있다. 개념 자체도 분리되어 다른 사업 분야이며 산업군이다. 더구나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가면서 부각 되는 것이 상상력에 기반한 창의적 발상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건축 설계는 이런 측면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국가적 보호와 관리 업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구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철학이고 사유적 대상으로 건축이 인정되는 역사성도 가지고 있다. 건축은 철학을 바탕으로 설계되는 분야다.
최근 다시 오래전 묻힌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이른바 경쟁력을 핑계로 한 건설사의 건축 설계 겸업이다. 도대체 이런 발상이 왜 나오는가?
건축설계와 건설은 긴장의 관계여야 한다. 지금도 암암리에 건설사가 주도하고, 투자한 설계사무소들이 법망을 피해 위장해서 운영되고 있다. 건축사 면허 대여와 호칭에 대한 법적 모호함을 피해가면서 불법적 행위가 진행되고 있음은 다 안다. 다시금 이런 이야기가 떠도는 것은 왜 일까? 경쟁력을 언급하지만, 이미 엔지니어링 법에 의한 기술사 영역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변호사와 검사, 그리고 판사를 구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사와 간호사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가? 설계와 시공은 언뜻 보면 통합의 시너지가 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건축설계는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모두 건설과 분리되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더욱이 시공 상의 수많은 부정부패를 극복하고 제어할 수 있는 순기능이 더 크다. 암암리에 자행되는 수 많은 불법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현실에서 건설사들의 설계 겸업은 사회적인 문제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통합의 시너지가 나타나는 장점보다는 불법과 부정이 난립할 근거가 될 수 있다.
지난달 모 건설사는 700여건의 건설업 면허대여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건설사들의 설계 겸업은 이런 부조리를 더욱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이 명약관화한데, 일자리 통합으로 분리된 조직들을 통합해 버리면 있던 일자리도 상실되고 만다.
독과점 법이 약한 우리나라는 문어발식 경영으로 문제가 되는데, 가장 큰 단점은 오히려 전문성 상실로 인한 경쟁력 악화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대형 건설사는 아예 주택시장에 진입하지 않는다. 주택들을 전문적으로 시공하는 하우스 메이커들이 독립된 산업군으로 존재한다. 이들 하우스 메이커들은 설계 겸업이 아닌 건축사들과 협력해서 새로운 디자인과 모듈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심지어 무인양품(MUJI)이라는 소매기업도 이렇게 한다. 다른 장르를 넘보지 않고 스스로 성장의 기회와 준비가 중요하다. 진정한 실력은 자기 자신의 업에 충실할 때 국제 경쟁력도 생기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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