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을 떠올리면...
부석사, 소수서원, 영주, 풍기, 소백 그리고 별이다. 까만 별밤을 소백산 끝집에서 맞이하는 기분은 남다르다. 해지기 전 소백산 국립공원의 선달산 자락을 가볍게 올라치면 늦은목이재가 나타난다. 별을 세다가 힘들면 다시 끝집으로 내려와서 새벽까지 별을 센다.

○ 수식어가 필요 없는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는 부석면 북지리에 위치한 사찰로서 건축물 6동으로 676년 창건한 사찰이다.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는 선묘낭자와 부석에 얽힌 전설이 있다. 신라 통일시기에 의상대사가 태백산맥 일대의 사찰들을 창건하였으며 그중 대표적인 사찰이 부석사, 봉정사, 불영사이다. 깊은 산속의 태백산 부석사는 앞이 확 트인 구릉지에 자리하여 주축이 남향이 아닌 사찰 전체의 주축이 17도 정도 꺾여 있다. 배치와 공간구성에 있어서도 다른 사찰과 달리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전형적인 산지 사찰이다. 부석사는 정토종 계열 사찰로서 주불이 석가여래가 아닌 아미타여래이다. 아미타 여래는 서방정토의 수호불로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중생들이 서방정토의 서쪽의 아미타 여래를 바라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13세기경 창건한 국보 18호에 해당한다. 지붕은 합작지붕, 기둥은 주심포계 구조로서 배흘림 양식을 하고 있다. 안양루에서 누마루 밑을 올라 들어서면 무량수전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자연 속에 어울려 자기 색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에서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이 더욱 느껴진다. 부석사에는 무량수전 이외에 무량수전보다 150년 정도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주심포계의 발전된 형태를 보여주는 고려 말 지어진 ‘조사당’이 있다. 안양문, 안양루, 응향각, 범종루가 있다. 범종루에는 범종과 목어가 단청을 곱게 하고 있다.

한여름인데도 바람이 살랑인다. 태풍의 끝자락에 묻어있는 구름은 하얀 솜구름 마냥 흔들린다. 이중 구름은 높은 구름속이 더욱 빨리 움직이면서 낮은 구름을 재촉한다. 자두가 나는 계절이다. 사과의 붉은 빛은 없지만 자두의 상큼함이 부석사의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 민족교육의 산실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영풍군 순흥면에 위치한 민족교육의 산실이다. 이 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 선생이 고려 말의 유현인 안향 선생의 연고지에다 중종 37년(1542)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폐를 봉안하고, 다음해에는 학사를 건립하여 백운동 서원을 창건한데서 비롯됐다. 명종 5년(1550)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 왕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이면서 한국 최초의 사립대학교가 되어 퇴계선생의 제자 대부분을 포함하여 4천여 명의 유생들을 길러냈다. 소수서원에는 겉과 속이 붉다하여 적송이라 부르는 3백년에서 천년에 가까운 적송나무 수백그루가 있는 ‘학자수림’이 있어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고 학자수가 있다. 바위에 새겨져있는 백운동과 붉은 색의 경(敬)자 신재 주세붕 선생이 직접 써서 새긴 ‘백운동 경자 바위’가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당이라고 하는 불화를 그린 깃발을 걸던 ‘숙수사지 당간지주’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소수서원 이전에 숙수사라는 절이 있어 당간지주가 남아있는 것이다. 퇴계이황선생 명명인 ‘취한’이란 뜻의 ‘취한대’는 푸른 연화산의 산기운과 맑은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이다. 서원 담 밖에는 풍광이 수려한 곳에서 시연을 베풀고 호연지기를 가꾸던 ‘경렴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 외에도 회헌 안향선생의 위폐를 모셔놓은 ‘문성공묘’는 보물 제1402호로 자리하고 있다. 보물 제1403호인 ‘강학당’은 유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던 곳으로 교실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사방으로 툇마루가 올려 놓여있다. 소수서원 내에는 도서관의 역할을 한 ‘장서각’, 봉향집기 등을 보관해두던 곳인 ‘전시청’, 회현 안향 선생을 비롯한 여섯 분의 초상을 봉안한 ‘영정각’이 있다. 또한 서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유숙하던 곳인 ‘지락재’와 ‘학구재’가 있으며, ‘일신재’와 ‘직방재’가 한 건물로 되어있다. ‘사료관’은 소수서원에 대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전시해놓았다.

소수서원을 거닐다 맑은 물소리에 따라나서면 죽계천의 시원함을 볼 수 있다. 돌다리가 유혹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 학자수림에서 불어오는 적송향이 가득 달려든다. 죽계천 넘어 취한대에 올라 노송의 기울어짐에 바람을 맞아보고, 백운동 경자바위에서 시 한 수 읊어본다. 백운교를 지나기 전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소수서원과 연계한 소수박물관의 광풍정이 발걸음을 잡는다. 영주시 청소년 수련관과 함께 성리학을 주제로 선비문화를 조명한 한국유일의 유교종합박물관인 소수박물관이다. 고대로부터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민족의 정신문화인 유교와 관련된 문화유산을 체계화하여 놓은 곳이다. 소수박물관을 둘러보면 해우당 고택에 또 한 번 시선을 뺏긴다. ‘선비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비촌의 옛 고택을 재현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터 역할을 구연해 놓은 곳이다.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철학이 담긴 선비정신을 거양하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도덕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괴리현상을 해소해보고자 충효의 현장에 재현했다. 영주에 들르면 한번쯤 잠을 청하면서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저작거리를 즐기는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부석사를 나와 선달산으로 가려면 두 갈래 길이 있다. 오전약수터를 거쳐 국립소백산 수목원을 지나 봉화를 넘어 도래기재를 거치고 영월로 들어가는 좋은 길과 해발 820m의 마구령을 넘는 길이다. 마구령은 백두대간 선달산과 소백산을 잇는 고개로서 차량이 넘을 수 있다. 우거진 산속의 편도 1차선을 차량들이 넘나드는 스릴 있는 고개에 다다르면 마구령이 있다. 몇 해만 지나면 터널이 개통하고 폐쇄될지도 모를 마구령. 차량으로 산을 오르는 느낌. 아마도 15인승 큰 차로 넘은 것은 처음일 것 같은 걱정도 즐겁게 넘는 길이다.

부석에 가기 위해 중앙고속도로의 풍기 IC를 지나 순흥면으로 향한다. 소백산의 웅장한 그늘과 함께 나란히 국도를 따라 나서면 적송향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부석이 가까워지고 부석을 가기 전에 문화마을 순흥 지역이 나타난다. 순흥 지역에는 소수서원, 선비촌, 소수 박물관, 저잣거리,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이 문화 전통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맑은 죽계천의 물과 적송의 시원함을 반나절동안 느낄 수 있다.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서 부석으로 향한다. 한국의 2대 사찰이라고 학창시절 배우던 기억을 떠올리며 부석사 무량수전이 그려진다. 길가에는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석사의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현수막도 걸려있다. 빨간 사과향이 가득하던, 손만 닿으면 딸 수 있었던 대학시절의 부석사를 한여름 새롭게 느끼고 왔다. 태풍의 끝자락에 위치하여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여행 내내 함께 해서 더욱 좋았던 부석. 밤에 검은 그을림의 삼겹살과 소주한잔하고, 새벽까지 카메라로 그린 ‘부석의 한 여름 밤의 별’을 원 없이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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