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유명한 건축사사무소 건축사가 SNS에 착공식 소회를 올렸는데, 어디에도 소개되지 않은 건축사에 대한 우울함을 토로했다. 비단 한해 두해의 일이 아니다. 도대체 이런 행위가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건설 중심의 한국 건축관 때문인 듯하다. 불행하게 시작한 한국의 근현대화는 일본 식민시절 한국인에게 허용되지 않은 건축사라는 직업. 아마 뿌리는 이 시절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급박하게 해방된 이후 건축의 주도권은 당장 시공해야 하는 입장에서 모든 법규와 제도는 건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건축사에 대한 홀대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건축사 제도가 만들어진 수 십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부작용이 작동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소설이 나왔는데, 출판사도 있고, 유통업자도 있고, 종이 공급처도 있고, 교정자도 표기되는데 정작 소설가 이름이 없다면? 착공식이나 준공식이라는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라 푸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푸념일까?
이런 병폐는 실제 건축사들에게 경제적 피해로 다가온다. 대전의 한 건축사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건축사사무소를 그만두고 교육청에 입사한 건축사는 건축기사도 받는 자격수당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내규에 없어서다. 그래서 정부부처에도 문의를 했는데, 기술사도 있고 건축기사도 해당되지만, 건축사는 없어서 자격수당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건축사는 국가기술자격법이 아닌 건축사법에 의한 자격이다.
뿐만 아니다. 수 십 년째 동결에 가깝게 멈춰버린 설계비는 여전히 비용으로 인식되어, 연일 뉴스에 나오던 임대아파트로 유명한 건설사 회장은 설계비가 아파트가격 상승의 주 이유라는 황당한 주장도 나온다. 이런 이유로 건설사의 설계 겸업을 주장하기도 했다.
적폐청산의 소리가 높은데, 정작 건축사를 둘러싼 온갖 적폐는 오히려 공고해지고 있다. 도대체 원가 절감에 왜 건축사의 역할 축소가 들어가는가? 설계가 불필요 경비인가? 이런 생각들의 저변에는 건축사의 역할인 건축설계와 감리 기능에 대한 몰이해에 있다. 눈에 보이는 건설의 기준은 당연히 설계다.
건축은 건설과 엄연히 다르고, 건축사의 역할은 단순한 엔지니어를 뛰어넘는 창작과 사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독립적 학문이며 직업이다. 그런 직업에 사회 경제적 가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설계비와 별개로 건축 설계직에 대한 일체의 경제적 가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건설기준의 엔지니어링 단가 기준으로 관련 참여자들의 인건비가 산정된다.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설계비와 개인의 노동 가치는 다른 개념이다.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공사나 민간 기업들 모두 건축사에 대한 개별 인건비 기준이 없어서 엔지니어링 단가를 적용한다. 해외와 다른 다양한 업무 프로세스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준공검사 대행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며, 다양한 건축사들의 자문 업무 역시 마찬가지다. 한 시간 자문이지만, 그 과정은 건축사의 전문적 해석과 창의적 대안이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엔지니어링 노임단가기준에 따라 기술사 노임을 대체해서 시간으로 나눠 지급한다. 타당한가?
정부기준에서부터 건축사업무에 대한 노동에 대한 인건비 기준이 없는 것이다. 창의적 대안이나 해석 능력 등을 반영하지 않고 근로에 대한 노동만 해석하기 때문에 시간으로 나누는 것이다. 건축사에 대한 몰이해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원작자인 건축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증축해서 원형을 훼손하기도 하고, 건축사의 존재를 지워버리기도 한다. 요즘은 건축공사 표지판에 설계자인 건축사가 표시 안 되는 경우도 꽤 있다. 민원인이 설계자를 몰라 전화항의 못하는 것에 행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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