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과 문화를 창작하는 전문가 예우는 당연!

▲ 류춘수 건축사

영국 ‘월드사커’지는 2003년 10월 ‘THE THRILLING FIELDS!'라는 기사제목에서 세계 10대 축구경기장을 발표했다. 바르셀로나의 캄프누, 암스테르담 아레나,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파리의 프랑스 스타디움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축구경기장이 꼽힌 가운데 서울의 2002 월드컵경기장도 이들 경기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고유정서를 상징화한 지역성, 시대성, 그리고 경기장 고유의 기능성을 바탕에 두고 방패연, 소반, 팔각모반, 황포돛배 등의 전통요소를 결합하여 상징화한 건축물이다. 도로 위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한강주변에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자리하도록 디자인되어 무엇보다 한국정서를 빼어나게 담아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얼마 전 서울월드컵경기장 내에 건립역사존이 생기며 설계자인 류춘수 건축사를 기념하는 경기장 스케치와 도면, 사진, 모형 등이 전시됐다. 해외에선 흔한 일이지만, 준공식 날 설계자인 건축사가 초대를 못 받거나, 개관식날 정·관계 참석자들에 가려 앉을 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국내 건축의 현주소를 바라볼 때 건축의 가치, 건축사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한국의 美를 누구보다 가장 잘 살리는, 가장 한국적인 건축사로 꼽히는 류춘수 건축사를 만나봤다.

*류춘수 건축사는...
-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졸업(조경학)
-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이공 대표(현)
- 영국 왕실 THE DUKE EDINBURGH FELLOWSHIP수상
- 미국 Honorary Fellows of AIA

Q.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건립역사존이 생겨 류춘수 건축사께서 직접 그린 경기장 스케치와 도면·사진·모형 등이 전시됐다. 공공건축물로는 국내 1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척박한 건축의 현주소와 건축사에 대한 예우, 인식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2002년 5월 서울월드컵경기장 개관식에 참석했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대통령 축사에서 훌륭한 경기장을 지은 사람으로 시장, 축구협회 회장, 시공사 사장만 거론했다. 그때 VIP석에 같이 앉아 있었는데 그때의 참담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월드컵 4강 진출 후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을 때도 ‘귀하는 국민 체위 향상에 이바지 해 훈장을 수여한다’고 쓰였다. 설계자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장 아닌가.
건축사 모르게 준공식이 열린다거나 설계자가 개관식에서 앉을 자리조차 없어 자리를 뜬다거나, 최소한 공공건축물은 누가 설계를 했는지 밝혀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문화가 국내엔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건축을, 건축사를 존중하는 문화가 없음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내 명함에는 ‘건축사’의 ‘사’자가 ‘선비 士’가 아닌 ‘스승 師’로 적는다. 우리 척박한 건축 현주소에 한 마디 하는 것도 건축을 건설의 하부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내 나름대로의 저항이다.(웃음)

Q. 어떻게 서울시 또는 서울시설공단을 설득시켰나? 기념관이 만들어진 계기, 과정은?

먼저 서울시설공단의 이만규 팀장, 정한영 차장과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공단에서는 경기장 바닥 우레탄 포장재 색상을 바꾼다든지 태양열, 보조경기장 만드는 것까지 설계자인 내게 의견을 묻고 자문을 받는다. 공공건축에서 준공 후에도 원설계자의 의도, 계획이 어긋나지 않게 유지관리 실천해주는 이런 시설담당자들의 철학, 생각이 대단히 중요하다.기념관은 공단측에서 설계자료 등 전시에 대한 기획을 해 제안,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10대 축구경기장으로 선정된 바 있고, 각종 공연 등으로 관광객들이 찾다 보니 자료전시관을 만들어 설계과정 등을 설명하면 경기장을 더 심도있게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취지에서 올 7월 공간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에게 말로 설명하기보단 설계의도 등을 조감도를 통해 보여주면 홍보, 관광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
건축, 건축사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 또는 사회풍토에 기인한 손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가게 된다. 법제도적 구조적인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고, 정부·공공기관이 나서 대안을 내놓고 적극 추진해야 한다.

▲ 서울월드컵경기장 서문 측에 류춘수 건축사가 직접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 도면, 그리고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Q.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축구도 할 수 있는 다목적건축물’이라 한다. 설계단계부터 월드컵이후를 생각했다고 들었다.

건축물을 설계할 땐 기술, 문화성도 중요하지만 건축사는 건축물 안의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반영하고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건축물의 용도, 실용성도 중요한 요소다. 조형미와 아울러 기술을 접목하면서 감독·선수·관중간 서로 다른 동선에 대한 고려뿐 아니라 설계당시부터 월드컵 이후의 수익구조를 고려한 영화관, 쇼핑몰, 웨딩홀 등의 공간설계를 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1년 수익이 200억 원이다. 체육시설 중 우수체육시설로 문체부장관상을 받은 바 있고, 건축물을 원 기능성에 충실하게끔 관리주체인 공단과 관계자들의 철저한 유지관리 속에 세계최고 수준의 수익을 내는 세계유일한 축구장이다.

Q. 평소 “구조개념은 건축사가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립역사존에도 미국 Geiger Engineering을 위해 직접 그린 월드컵경기장의 구조 개념도가 전시돼 있다. 예전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도 세계최초로 케이블 돔공법을 이용해 천막을 지붕으로 만든 것처럼 구조 등 기술을 과감하게 활용해 건축물의 구조적 아름다운을 강조해왔다.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초기 스케치에서 최종 실시설계 수준의 치수 정리에 이르기까지 직접 챙겨 실무 스태프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획단계에서 최종 투시도까지 직접 마무리하는 걸 즐긴다. 건물의 기능이나 디자인, 구조 기술적 문제 등을 아우르려면 당연한 것이다. 최첨단 기술을 건축에 접목하면서도 한국의 미를 건축속에 담으려 하는데, 방패연 형상의 월드컵 경기장 지붕, 노자의 동양철학이 담겨진 하이난 868타워(1992년) 모두 전통건축의 철학을 설계에 반영한 결과물이다.
미국의 막구조 전문가인 데이비드 가이거 박사와 1986년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 등 대형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했다. 디테일 마무리를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도 구조개념도도 직접 그려 그에게 건넸다. 이외에 개념설계, 평면 기하 개념도, 입·단면 계획, 수익극대화를 위한 사후활용계획, 지붕 구조, 지붕 디테일 드로잉, 주 단면도 스케치를 모두 손으로 그려 마무리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그동안 주택설계에서 하이테크 디테일을 요구하는 초고층건축물까지 섭렵해 인테리어, 조경, 도시분야, 해외프로젝트까지 작업영역을 넓혀온 건축지론과 실무적 역량이 집약된 결과다.

Q. 이번 일이 ‘건축사 예우, 건축설계의 가치, 건축사의 역할’을 위한 좋은 본보기가 돼야 한다. 한 말씀 부탁한다.

평소 틈만 나면 붓펜으로 드로잉을 한다. 낙서하듯 그리지만 자꾸 그리다 보면 생각의 싹이 트고 이것이 다시 숙성된다는 생각에서다. 서울월드컵경기장도 프랑스 월드컵 경기장을 보러 가던 비행기안에서 그린 스케치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어 드로잉, 개념도면 모두 건축의 밑거름이며 이를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수단으로 구조, 기술, 재료, 법규 등이 총합이 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건축사는 바로 이런 건축물을 구현해 우리 삶을 디자인하는 전문가다. 문화적 가치의 존중뿐 아니라 이런 건축물과 문화를 있게 하는 창작자에 대한 예우가 우리 사회에 당연히 필요하지 않겠나.

대담=천국천 편집국장, 사진=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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